[필동정담] 빌리 그레이엄

신헌철 기자(shin.hunchul@mk.co.kr) 2023. 6. 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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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이뤘다. 1884년 미국 감리교가 고종에게 선교 허가를 받은 것을 시초로 보면 내년에 140주년을 맞는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과 기복 신앙을 중심에 두면서 빠르게 세를 키웠다.

분기점 중 하나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1918~2018)의 1973년 여의도 전도대회였다. 그는 침례교를 넘어 미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정신적 멘토였다.

그레이엄 목사는 닷새간 집회를 열었는데 6월 3일 마지막 날 모여든 인파는 11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해 서울에 교회가 600개나 늘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군 하우스보이 출신으로 영어 이름도 '빌리'였던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이 통역을 맡아 유명해졌다. 한국 기독교계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 그래함(주최 측 표기)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연다.

통계청은 10년 주기로 종교별 교인 통계를 내는데 2015년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불교를 앞질러 국내 최대 종교가 됐다. 기독교 967만명, 불교 762만명, 천주교 389만명 순이다.

그러나 종교의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은 이미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한때 90%였던 미국은 60%대로 낮아졌다. 한국도 고령화 속에 20·30대 교인 비중이 해마다 줄고 있다고 한다.

어릴 적 다녔던 교회 목사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출신이었다. 인민군에 끌려가 국군에 총부리를 겨눴지만 휴전 후 남쪽을 선택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를 맨손으로 개척했다. 장마철 반지하 교회로 빗물이 들이치면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밤에는 야학을 열고 낮에는 전도를 했다. 번듯한 교회를 일궜지만 오롯이 교인들 손에 돌려주고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한동안 한국 기독교와 관련한 뉴스는 세습 문제나 정치 개입 논란이 주를 이뤘다. 세속의 약자 곁으로 다가서고 세상의 변화와 호흡하려는 교회여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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