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글쓰기의 부담
있는 그대로 할 말만 써와
길게 쓸 것 없어서 힘겹지만
솔직함 좋다는 말에 용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학술 논문도 꾸준히 써야 하고, 때로는 원고 청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에 글쓰기가 중요하지만, 솔직히 글재주가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늘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대학 시절 우리 학교의 그 악명 높았던 '매주 독후감' 제출이라는 과정을 1년이나 했기에 그나마 간신히 짧은 글이라도 쓸 수 있게 된 듯하다. 나는 이공계열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그냥 표현해야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여러 수식어를 쓰는 문장이나 미사여구로 꾸밈이 많은 글에는 본능적으로 짜증이 나기도 한다. 꾸밈이 많은 글을 접하면 속된 표현으로 '분 냄새'가 심하게 느껴져 계속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할 말 하고 간략히 표현하면 이제는 길게 쓸 것이 없는데, 소위 '원고 분량'이라는 조건으로 어쩔 줄 모르게 힘겨워한 경우도 많았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본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장 수도회에 입회하여, 천주교 사제가 되기 위해 새로이 꼭 필요한 인문 계열의 철학 과목들을 공부해야 했다. 10여 과목의 철학 필수 교과목 중 기초 과목이기도 한 '인식론'이란 과목을 수강했어야 했는데, 한 학기 내내 '앎(知)'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철학자들의 여러 '썰(說)'을 공부해야 했다. 당시에는 그냥 느낌에 '아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따지고 설명해야 하지 하며 속으로 답답함을 느낀 시간이 많았다. 특히 중간시험을 치를 때 사실 질문에 대한 서술형 답을 나름대로 작성하니 답안지 반쪽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주변 동료 학생들의 답 작성 모습을 보니 벌써 어떤 학생은 답안지를 전부 다 채우고 뒷면에 이어서 작성하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도 철학 공부를 한 지 3학기쯤 지나서는 아는 것을 고무줄처럼 늘려 한 문장을 서너 문장으로 작성할 수 있는 역량 아닌 역량이 생겼다. 이러다 보니 간단하고 분명한 것을 복잡하고 요리조리 유식한 척 치장하여 서술해야 '좀 있어 보이는' 글이 된다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문장이 복잡하고 일그러지고, 결국에는 읽기 불편한 문장을 쓰게 된 듯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약점은 외국 유학 생활을 한 10년쯤 했고, 게다가 늘 읽는 책들이 거의 서양 서적들이다 보니, 한글 문장이나 표현은 더없이 일그러져 바른 한글이 아닌 철저하게 서양 표현이나 어법에 물들어 오염된 이상한 표현을 쓰게 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의식마저도 없어졌다. 그런데도 글을 읽다 보면, 더욱이 외국 서적을 우리말로 번역 출판한 서적들을 보면 그 서양 냄새에 온통 마음이 답답해져 힘이 들 지경일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대학이라는 사회에 몸담아 논문도 써야 하고 청탁받은 글도 써야 하기에 문장 공부를 하려 꽤 애를 썼다.
시대에 이름난 문장가나 수필가들의 글을 짬을 내 정성 들여 읽으며 표현법을 익히고 우리말다운 문장을 구성하려 애썼지만, 워낙 이과 머리인 나에겐 힘에 부치는 작업이었다. 문법이나 표현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한글 맞춤법이나 우리말 바로 쓰기 등의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했고, 우리 시대의 저명인사들이 펴낸 글쓰기 관련 책들을 빠지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살펴보고 공부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훈련을 나름 꾸준히 했지만, 생각만큼 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방면에 워낙 실력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어느 분이 '신부님의 글은 솔직 담백하고 꾸밈이 없어 읽기에 아주 편해요!'라고 평을 해주셨기에 그나마 용기를 내어 필요할 때 주저하지 않고 글쓰기를 한다. 타고난 재주가 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게 나의 모습인 걸 어쩌겠는가. 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만인 것을!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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