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보조금 횡령 의혹, 언론은 왜 '시민단체'로 싸잡아 비난할까

민주언론시민연합 2023. 6. 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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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 감사원. ⓒ 연합뉴스

비영리민간단체가 보조금을 빼돌렸다며 감사원이 수사를 요청하자 언론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시민단체 부정행위로 싸잡아 매도하는가 하면 윤석열 정부 국고보조금 투명화 정책 성과인 양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5월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고보조금 횡령 등 혐의로 10개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해당 비영리민간단체가 어떤 곳인지, 혐의는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 설명 없이 감사원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해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언론보도를 확인해본 결과, 감사원 보도자료에 수록된 사례 전부를 시민단체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시민단체가 국방부 보조금 받고, 한류사업 하나

'비영리민간단체'는 비영리 목적 민간단체를 총칭하며, 각종 법령에 의해 설립된 단체부터 기업 협회, 비영리 연구소, 비영리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등까지 포함합니다. 시민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의 한 갈래일 뿐, 비영리민간단체가 바로 시민단체를 뜻하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이 감사원 보도자료의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바꿔 보도했습니다. 일부는 '비영리민간단체'를 '비영리단체'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5월16~19일 21개 언론사 관련 보도 41건 대상으로 비영리민간단체 구분여부를 분석한 결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그 중 횡령액이 가장 큰 사례로 적시된 '10억 5천만원 횡령'의 경우 국방부 보조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1억 1천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한류사업 일환으로 PC케이스 주문제작 사업을 했다고 나오는 등 통상적 시민단체 활동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공시된 보조금 지급내역과 교차 검증해본 결과, 10억 5천만원 횡령을 포함한 일부 사례에 언급된 단체의 경우 대표 및 이사진에 전·현직 여야 정치인, 관료가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원이 발표한 비영리민간단체 횡령 사례가 모두 시민단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입니다.

▲ 감사원 보도자료 근거로 정리한 적발사례, 주무관청, 감사원이 주장한 횡령금액 내용.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세월호 지원사업 사례만 '실명 보도'

감사원 조사결과를 전한 언론보도를 보면 <범죄단체 아닌 시민단체입니다… 혈세 17억 빼돌린 '그들 수법'>(중앙일보), <文정부서 혈세 타내 펑펑 쓴 시민단체… 손녀 승마하라고 말도 사줘>(조선비즈) 등과 같이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둔갑시킨 것은 물론 '범죄단체', '혈세 타내 펑펑 쓴' 식의 자극적 표현이 대거 등장합니다. 중앙일보 <사설-국가지원금 빼돌려 제 주머니 채운 파렴치 시민단체들>이나 매일경제 <사설-혈세 빼돌려 자녀 집 사고 손녀 유학… 횡령백화점 된 시민단체>에서는 '파렴치', '횡령백화점' 등의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비리라면, 단체명을 공개할 법도 하지만 감사원과 언론 모두 철저하게 익명 처리했습니다. 유일하게 단체명이 공개된 사례는 세월호 지원사업 일환으로 열린 주민 인문학 강좌에서 북한 제도 관련 강좌를 열었다며 문제 삼은 안산청년회 사례뿐입니다. 횡령금액은 감사원이 주장한 전체 횡령액 17억5천만 원 중 380만 원에 불과합니다. 10억5천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익명 보도되고, 380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실명 보도된 것입니다.

언론윤리 문제도 있습니다. 이번 감사결과는 단지 감사원의 주장일 뿐 법적 판단을 거쳐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감사원이 수사의뢰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언론이 이를 보도할 경우 반론취재를 통해 당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감사원 조사결과를 사실로 전제하고, 사실관계 확인이나 검증은커녕 반론조차 불가능하게 익명처리한 채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해석해 '시민단체 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취재의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프레임만 내세우는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시민단체 공격하는 '보조금 의혹' 프레임

2020년 이른바 '정의연 사태' 당시 수많은 언론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의 보조금 부정수령 의혹을 제기했지만 1심 판결에서 보조금 부정수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잘못된 보도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지금까지 '보조금 의혹' 프레임만 남아 시민사회단체를 공격하는 상투적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재보궐선거부터 '시민단체 1조원 지원설'을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하니 서울시 산하기관과 대학 등에 지원된 보조금까지 끼워넣어 1조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역시 '민간단체 보조금'이 곧바로 '시민단체 보조금'으로 오해되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프레임 조작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 국무조정실 주도로 진행한 국고보조금 자체감사 결과를 국무회의에서 보고하기도 전인 5월 19일 언론에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불법사용액이 200억이 넘는다'고 흘렸습니다. 중앙일보는 여기서도 '비영리 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바꿔 <단독-시민단체, 보조금 불법사용 200억 넘는다… “빙산 일각”>(5월19일)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정권과 언론의 '사실조작' 합작에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거짓 프레임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감사원 보도자료와 5월16~19일까지 21개 언론사에서 보도된 관련 기사 41건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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