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혀요"…'멘붕' 온 CEO들, 어떡하면 좋을까요 [긱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회사를 성장시켜야한다는 압박,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각종 의사결정에 대한 고민 등으로 극한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다. 투자 혹한기인 현재 창업자들의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창업자들은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주변에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한경 긱스(Geeks)가 '창업자 마음상담소' 출범식에서 공유된 창업자들의 고민과 멘탈관리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
"많은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잘 보이려기 위해 본인이 힘들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를 받았다면 '깐부'가 된 건데 힘들다면 내 패를 공개해야 투자자가 도와줄 수 있어요." (김영인 가지랩 대표)
"모든 사람 어깨에 짐이 있지만 창업하면 그 짐이 더 무거워지죠. 그 짐을 어깨에 24시간 매고있기보단 잠깐이라도 내려놓으면서 '생각한만큼 무겁진 않네'라고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정은 마보 대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산나눔재단, 디캠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4개 기관이 주관한 '창업자 마음상담소' 출범식에서 스타트업 대표들이 나눈 말들이다.
Q. 스타트업의 겨울이라는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나.
유정은 마보 대표 요즘 창업자끼리 만나면 인사처럼 하는 말이 ‘(런웨이가) 얼마나 남았습니까?’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폐업은 어떻게 해야하냐’는 식의 얘기까지 나오는 것 같다. 대표들이 회사 그만두는 직원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너는 그만둘 수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ㅎㅎ. 다들 많이 힘들고 힘든 와중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걸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다.
김영인 가지랩 대표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오히려 운이 좋은 타이밍이라고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때 저금리 시대엔 투자 시장에서 스타트업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손실이 나더라도 매출과 가입자 수에 집중하던 시절이었다. 이 때는 건강하게 크고 싶어도 외형 성장이 없으면 시장에서 퇴출됐다. 지금은 초기 스타트업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성실하게 쌓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초기투자를 받기까지 난이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심적 부담이 많다.
Q 디캠프는 창업자 정신건강실태보고서도 냈는데 인상적인 내용을 소개한다면.
김영덕 디캠프 센터장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불안감 우울감 스트레스 심지어는 자살충동까지 창업자가 일반인보다 80~90% 높았다. 여성 창업자의 위험도가 더 높았다. 6대4정도로 (여성이) 높은 것 같다. 투자 많이 받은 창업자일수록 스트레스는 더 컸다. 보통은 투자 많이 받으면 주변에서 굉장히 축하하는데 사실 투자를 받을수록 부담감도 크다. 투자를 많이 받으면 직원도 늘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책임감도 있는 것 같다. 또 디캠프의 마음상담 서비스를 받았던 창업자들의 파드백을 보면 '나만의 문제인줄 알았는데 나 말고도 (힘든 사람이) 굉장히 많구나'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얻는 위안이 있다. 창업자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상처받는 게 뭐냐면 ‘당신 제품 별로예요. 못 사겠어요’ 하는 말이 마치 제품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들린다고 한다. 일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당신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제품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라고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다.
Q. 스타트업 대표로서 어떤 고민과 해결방안을 갖고 있나.
김영인 가지랩 대표 눔 한국 대표로 이른바 ‘월급 사장’으로 있었다. 실제 창업해보니 창업한 대표는 아예 다른 수준이었다.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종류의 경험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른 창업자 만났을 때 많은 힐링이 됐다. 다른 산업에 계신 대표님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창업자들 병이 딴 사람 사업이 내 사업인 것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다른 창업자 얘기를 들으면서 ‘나라면 여기서 어떻게할까?’ 생각하고 알려준다. 같은 업계에 있으면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한데 다른 산업 창업자를 만나면 해결점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창업자들이 사업 방향을 잘 잡아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마음이 힘들어서 받는 심리상담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이 사업을 어떻게 끌고갈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인데 이 방향성을 못 건드리고 건강에만 집중하면 쳇바퀴라고 생각한다.
유정은 마보 대표 유치원생 수준으로 (시장에) 나왔는데 프로 수준을 요구받는다. 경영능력, 재무, 인사에서 모두 프로페셔널을 요구받는다. 본인이 원하는 이상과 실제 자신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타'가 오는거다. 알코올중독 재발 막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물치료가 아니라 알코올중독을 겪었던 사람과의 대화였다고 한다. 실패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스타트업계에 생겼으면 좋겠다. 요즘엔 회사를 접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못하는 대표님들이 많다. 익명이라도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실리콘밸리의 경우엔 어떤가.
김영덕 디캠프 센터장 실리콘밸리 투자사 중엔 투자금의 1%를 창업자의 멘탈관리에 쓰도록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창업자들이 실제로 멘탈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끔 하는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라고 생각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금을 넣는 회사의 사람들을 잘 케어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창업자 끊임없이 의사결정하는데 이 자체가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하는 거다. 잘 셋업된 기존 산업이 아니라 안해본 길 가는 길이라서 불확실하고 시장 통계도 전례도 없는 일을 하다보니 기존 산업의 경영자들에 비해 부족한 정보, 불확실한 조직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한다. 확률적으로 결정이 틀리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훌륭한 창업자들이 마치 전지전능해서 ‘이렇게 하면 성공했다’ 하는데 다 거짓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가 내가 투자한 돈의 일부를 창업자의 멘털케어에 쓰도록 권고하는 건 현명하다고 본다.
Q.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강한 멘탈관리를 위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방법은 무엇일까.
김영인 가지랩 대표 의사면허 있어서 일주일에 한타임 진료 보는데 스타트업 대표와 경영진들 많이 찾아오신다. 검사해보면 2030 젊은 분들인데 몸 상태가 떨어져있는 분들 많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 절반은 눈물 흘린다. 눈물의 의미 뭐냐면 ‘내가 힘든 게 맞았구나’하는 거다. 늘 ‘정신무장해야돼’ ‘극복해야지’ ‘그러려고 창업했어?’ 같은 얘기만 듣다가 ‘내가 힘들구나’ 인지하는 순간에 감정적으로 터지더라. 그런데 이걸 진료실까지 와서 깨닫는건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들고 정부 차원에서 창업자 분들이 힘들다고 말할 환경을 마련해주는게 중요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누구나 힘들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수 있다. 또 첫 창업, 첫 투자를 받은 창업자는 VC한테 잘보이려고 한다. 투자 피칭과 설득에 익숙해져있어서 문제는 숨기고 알아서 해결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투자 받았으면 ‘깐부’가 된건데 내 패를 다 공개하고 알려줘야 VC가 도와줄 수 있다. 조기에 문제를 발견해서 대처할 환경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회성 창업자 행사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로 확대될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Q. 투자자 입장에선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까.
윤건수 벤처캐피탈협회 회장 두 부류로 나눠서 봐야한다. 하나는 잘나가는 벤처. 하나는 힘든 벤처. 모든 사람들은 ‘그레이트’가 될 자질이 있는데 ‘굿’이 되는 순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잘나가는 곳들은 ‘굿 컴퍼니’까지는 갔는데 이후에 많은 투자자들은 ‘네가 거기서 멈추면 그레이트 컴퍼니까지 갈 수 없다’며 알게 모르게 푸시를 한다. 그 과정에 있어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창업자를 굉장히 많이 봤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큰 기업 CEO들이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다. 또 한 부류는 회사가 힘들어서 급여주기도 힘든 경우다. 그런 기업들은 다르게 분리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상담은 사업해본 사람이 사업가하고 얘기하는게 가장 좋은 상담이라고 본다. VC협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Q. '숨이 턱턱 막혀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정은 마보 대표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창업 하고 7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창업하고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생존 모드로 달려온 느낌이다. 어깨에 짐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짐이 있지만 창업하면 그 짐이 무거워지는건 사실이다. 예전엔 상사만 만족시키면 됐다면 이젠 투자자 직원 가족… 만족시켜야할 사람이 많아진다. 그 짐을 어깨에 24시간 매고계시는 분도 있다. ‘매고 있으면 해결될거야’ 하면서 내려놓지 않는 건 소금 짐을 지고 물속 나아가는 것과 똑같다. 명상이든 다른사람과의 대화든 짐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짐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잠깐 내려놓으면서 ‘내가 생각한만큼 짐이 그렇게 무겁진 않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만의 방법 찾았으면 한다.
Q. 창업자의 가족들이 해줄 수 있는 일도 있을까.
김영인 가지랩 대표 짐을 내려놓는 훈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가족이다.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 확보하고 그 시간은 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시간으로 정해놓는 식이다. 가족에 집중할 시간을 일부 할애하는게 역설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된다. 전 5살짜리 딸이 있는데 저의 루틴은 저녁 때 집에 가서 아이를 씻기는 것이다. 딸과의 관계도 유지되고 5살 아이를 케어하는 그 순간엔 사업 생각을 못 한다. 강제적으로 사업 생각으로부터 살짝 벗어나게 하는데, 한시간 사업생각 안한다고 절대 사업 안 망한다. 오히려 그걸 24시간 끌고나가기 때문에 망한다. 가족, 취미, 네트워킹 무엇이든 사업으로부터 분리할 시간을 일상에서 적절한 비율로 배치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가족이 서포트 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를 공개하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게 중요하다. 뼈때리는 말 해줘야하는 분들은 ‘뼈 때리는 말 해달라’고 부탁해라. 또 창업자라고 다 ESTJ만 있는건 아니다. I(내향적)인 분들도 많은데 여리신 분들은 만약 투자를 받으려다가 잘 안됐다면 ‘투자자가 나빴네!’ 식의 절대적인 지지와 격려를 해달라고 가족에게 요청하면 된다.
김영덕 디캠프 센터장 예전에 사흘밤 새고 3일에 한번 집에 가고 이랬는데 어느날 밤에 집에 가니 집사람이 웅크리고 울고 있더라. ‘왜그러냐’ 하니 ‘너무 힘들다’고 했다. 끌어안고 한시간을 같이 울었는데 그때 이후로 집 문 열고난 후엔 회사 일은 차단하기로 했다. 우선 첫번째 지키기로 한게 ‘집에 간다’다. 밤새지 않고 집에 간다는 것. 사업을 한다는 건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달고 사는 것이다. 그럼 밤에 잠을 잘 못잔다. ‘이 문제 어떻게하지?’하는 게 계속 꼬리에 꼬리에 문다. 나는 가상으로 머리속에 스위치를 연상하고 매일밤 스위치를 내리는 연습을 했다. 연습을 열흘쯤 하니까 가상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정신도 탁 거지면서 잠들더라. 잘 자는 게 사업에도 도움이 됐다.
김영인 가지랩 대표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힘든 사실을 주변에 오픈하고 도움 받으시길 바란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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