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따뜻함으로 … 병아리가 부화하는 전시장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6. 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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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올인원' 촛불발전기 전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내달 1일까지
박웅규는 동양적인 추상화 선보여
백정기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아라리오갤러리

어두운 전시장을 촛불의 제단이 밝히고 있다. 촛불 에너지는 10개의 열에너지 포집장치를 통해 전기로 변환돼 전시장 중앙 부화기의 온도를 유지한다. 양계장도 아니고 공방도 아닌, 미술작품이 걸려야 할 갤러리에서 병아리가 부화하고 있다.

백정기 씨(42)는 2015년 두산갤러리 개인전에서 처음 시도한 이 작업을 발전시켜 사람들의 염원을 시각화한 촛불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아이디어의 구현을 위해 전문가, 기술자를 고용하는 대신 작가는 대부분의 공정을 직접 손으로 제작했다. 매일 전시장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부화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작가는 병아리가 태어나면 직접 작업실에서 기르겠다는 포부다. 백씨는 재료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연구를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수 년간 실험을 발전시킨 세 개의 시리즈 '촛불 발전기와 부화기' '능동적인 조각' 그리고 'Is of'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 1층, 1층, 3층에서 각각 선보인다. 분리된 각 층의 개별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백씨의 작품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주제들인 생성, 소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능동적인 조각'은 2011년부터 진행 중인 '메모리얼 안테나'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전태일, 손기정, 이승복, 오수의 개(犬) 등 잘 알려진 동상들을 3D 스캔해 조금씩 변형시킨 조각으로 설치했다. 각각의 조각은 송신용 안테나다. 미스터리한 소설을 낭독하는 목소리와 첼로 연주가 송신돼 전시장 곳곳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Is of'는 백씨가 자연풍경을 찍은 신작 사진 연작이다. 노랗게 색이 바랜 듯한 사진들은 설악산, 보성 녹차밭 등 촬영 장소에서 수집한 단풍잎, 녹찻잎 등으로부터 추출한 색소를 이용해 출력해 자연물과 인공물의 화합을 시도했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행위는 자연의 변화를 멈추게 하려는 인간의 개인적인 욕망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것은 문어인가, 부적인가. 한국과 일본의 고전 불화(佛畵)에 대한 조형적 감응을 화폭에 담아온 박웅규 씨(36)는 소의 창자를 상징적이고, 추상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4층에서는 박씨의 첫 개인전 '의례를 위한 창자'가 나란히 열린다. 괴물과 신의 형상 등을 특유의 고전적인 동양화풍으로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소의 창자를 추상화로 구현해낸 독특한 신작 등 14점을 선보인다.

'더미' 연작은 2015년부터 나방과 지네 같은 괴생명체를 담아온 그의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는 소의 내장 부위에서 보이는 조형적 특이점을 확대하고 추상화해 신작으로 풀어냈다. 소의 내장 10개의 종류를 한자로 풀어서 쓴 작품 '흉 17'(2023)이 한자리에 소개된다. 전시장의 마지막에서는 일본화를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인간의 본성을 10단계로 구명하는 선화(禪畵) 십우도(十牛圖)를 모티브로 하여 소를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과정을 10개의 화폭에 담은 '십우도'(2023)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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