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만남의 해피엔딩…“고통의 이유를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우당탕탕 귤엔터]

기자 2023. 6. 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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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시련을 이겨내는 법
제주MBC <로그인 제주>에 소개된 귤엔터 마지막 연습생 오렌지. 다회의 촬영 경력으로 노련함을 보여줘 촬영팀 모두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 제주 MBC에서 촬영이 있었다. ‘귤엔터테인먼트의 하루’라는 콘셉트로 리포터가 오렌지의 일일 매니저로 하루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촬영을 마치고서야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돌 콘셉트의 강아지와 촬영한다고 알고 귤엔터 본사의 문을 연 리포터는 17㎏의 주름진 얼굴을 한 오렌지를 마주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상상 속 강아지와는 사뭇 다른 강아지가 앉아있어 사실 신발을 벗을까 말까 망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수차례 촬영을 경험한 오렌지의 의젓하고 프로다운 모습에 편견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저에게 강아지는 오렌지가 기준입니다.” 오렌지의 매력에 푹 빠진 리포터가 헤어지며 선언하듯 남긴 말이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연습생들과 다닐 때면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하곤 했다. 작년 겨울 서울 성수동에서 가족을 찾는 중대형 구조견들과 함께 연합 팬미팅을 했을 때도, 행사가 열리는 줄 모르고 공간에 들어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 개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입장을 주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족 찾는 유기견들의 팬미팅’이라고 안내하면 당혹감은 이내 사라지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다정한 응원의 말까지 건네주었다.

유기견이라는 말이 매번 사람들 마음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실 유기견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귤엔터 소속의 열여덟 멤버들은 모두 엄밀하게 말하면 유기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가족을 찾는 개’를 표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 말이 유기견 외에는 없었던 탓에 우리는 귤멍멍이들을 유기견이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보통 유기견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전형적인 모습은 공원에 누군가 버리고 가서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작은 강아지나, 보호소 철망 케이지 너머에 겁먹은 채 불안에 떨고 있는 여린 강아지일 것이다. 우리 멤버들처럼 마당에 지저분한 상태로 묶여 살던 개들이나, 관리가 되지 않아 방치된 개들, 산과 들을 떠돌아다니는 개들은 전형적인 유기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개농장 철창에 갇혀있었거나
팻숍에 새끼들을 납품해왔거나
힘겨웠던 시간의 맥락이 삭제된채
유기견이란 말 하나로 규정하는 건
이들의 아픔을 왜곡·축소하는 것
현재 유기유실견의 70% 이상이
관리 소홀로 떠돌던 개나 그 혼종
어떻게 보듬는 게 진짜 좋은 걸까
귤멍멍이 가족들의 사례처럼
반려의 경험이 더 많이 공유되기를

유기견이라는 범주 안에는 유기되고 얼마 되지 않아 구조된 개들도 있지만, 사실은 훨씬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유기된 지 이미 오래되어 사람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개들.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은 평생 바닥을 밟아보지도, 물 한 모금 마셔보지도 못한 채로 철망에서 음식물쓰레기만 급여받는다. 다른 개들이 잔인하게 죽임당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어느 날 구조된 것이다. 밭지키미 개들은 홀로 밭 한가운데 묶여 가혹한 사계절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끼며 다가오는 사람과 동물을 경계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줄이 풀리면 떠돌이개나 들개로 정처 없이 헤매다가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사람을 피해 다니는 방법을 배운다. 사람을 피하기 때문에 마취총을 맞은 채로 보호소에 입소하기도 하고, 공고문에 경계심이 있다는 특이사항이 한 줄 추가될지도 모른다. 이런 개들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드물고 산책을 해본 적도 없고 줄을 매본 적도 없기에 줄에 대한 좋은 기억도 없다. 펫숍에 납품되는 새끼들을 출산하는 번식장의 개들은 장기가 모두 망가질 때까지 출산을 반복하다 애견미용 견습용으로 사용될 때 사람의 손길을 처음 느낀다. 좁은 집에서 방치된 채 끊임없는 근친교배 속에서 태어난 애니멀호더의 개들이나 보호소에서 태어난 개들은 사회적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성장기를 보낸다.

최근 잡지 촬영도 의젓하게 마친 오렌지 연습생. 가족만 있으면 완벽하겠다.

이들을 모두 유기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빈약한 범주일 뿐만 아니라, 개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왜곡하고 축소한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삶의 면면이 고통으로 점철된 개들의 상태를 설명할 말을 더 많이 풍부하게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보호 중인 유기·유실견 중 70% 이상이 혼종견, 특히 진도 혼종견이다. 의도적으로 유기된 개보다 마당이나 밭에 묶여 키우다 관리 소홀로 떠돌이가 된 개들과 그 새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유기견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야기되는 것에 비해, 마당개나 실외견은 사회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종종 조명되곤 하는 들개조차도 대부분이 유실된 마당개나 밭지키미 개이지만 그렇게 개를 키우는 문화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는 어디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이 개들이 겪어온 삶의 맥락이 모두 삭제된 상태로 그저 유기견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된다면 사람과 개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구조된 마당개가 집 안에서 처음 함께 산다고 할 때 무엇부터 해야 할까? 사람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먹이활동을 해오던 개에게 밥은 어떻게 주어야 할까? 평생 바닥을 밟아본 적 없이 식용 개농장이나 번식장 철창에 갇혀있던 개가 집에 온다면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산책줄에 매여본 적이 없어서 줄을 무서워하는 개가 온다면? 겁먹은 개를 진정시키기 위해 쓰다듬으려고 하자 개가 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단 이런 개들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지저분한 번식장에서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엄마와 떨어져서 펫숍 쇼윈도에 갇혀있던 개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을까? 우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들이 집에 왔을 때 무엇을 제공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교육을 통해 인간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개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그것이 개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자료 역시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개가 집에 오면 그동안 고생했다며, 이제부터라도 푹 쉬고 마음껏 먹으라며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삶아 배부르게 먹이고, 끊임없이 이름을 부르고 쓰다듬어주며 그간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다양한 낯선 자극에 당황하고 흥분하는 개에게 아무리 맛있는 간식으로 유혹하여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개를 편안하고 배부르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종종 유기견을 입양한 사람들이 강아지의 입양 전 안타까운 모습과 입양 후 변화된 모습의 사진을 대조해놓은 입양 후기를 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글을 보면, 그 압축된 두 장의 사진 사이에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 있을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틱한 변화를 위해 시도해왔을 여러 가지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세상을 제대로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개들이 인간 사회 일원으로서 하루를 평온히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온 여러 가지 구체적인 시도들이, 반려동물에 관한 논의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고통을 받는 개들에 임시보호처를 제공하거나 입양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개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런 개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귤멍멍이 데뷔 멤버들 중에 어느새 가족을 만난 지 1년이 넘어가는 멤버들이 있다. 대부분 초보 반려인이었던 가족들이 그간 우당탕탕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우리는 ‘귤엔터 애프터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반려견 관리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입양 가족들이 평소 고민하던 반려견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주기도 하는데, 영상 속에는 산책 중에 줄을 당기며 걷는 것이나, 개나 고양이 등을 보고 흥분하거나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카페나 집에서 쉬는 귀엽고 예쁜 모습을 보는 것도 항상 반가웠지만, 영상 속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개와 일상을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기분이라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다양한 자극 안에서 맛있는 음식과 칭찬이 보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적절히 배분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여러 고민을 나누고 있다. 같이 잘 살려는 방법을 시도해보고 조언과 응원을 나누는 귤멍멍이 가족들의 사례처럼 구조한 개를 잘 반려하고자 하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

어릴 적 때때로 동화책 속 ‘공주님은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구로 끝나는 책을 덮을 때면 정말로 그들이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을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시련을 이겨낸 운명적 만남 이후에는 그들에게 시련이 없을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주인공들은 슬기롭게 시련을 이겨냈을까? 동화책은 그렇게 끝났지만 우리는 ‘유기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라는 해피엔딩 이후의 이야기도 오래 나누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운명적 만남 이후에도 많은 시련이 그들에게 찾아왔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이겨냈는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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