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화학물질 PFAS ...“듀폰·3M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장윤서 기자 2023. 6. 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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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에 있는 미국 환경보호청 환경 솔루션 및 비상 대응 센터에서 에릭 클라이너(가운데)가 식수 및 PFAS 연구의 일환으로 실험용 샘플을 분류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발암성 오염물질 ‘과불화화합물(PFAS)’을 생산하는 미국 최대 화학기업 듀폰과 3M이 인체 유해성을 알고도 20년 넘게 감춰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 기업이 생산한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PFOA(퍼플루오로옥타노익 에시드·과불화옥탄산)’는 흡입 시 기형아 출산율을 높이고 궤양성 대장염과 각종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트레이시 우드러프 교수와 나디아 가버 교수 연구팀은 2일 국제 학술지 ‘세계 보건 연보(Annals of Global Health)’에 듀폰과 3M의 내부 기밀 문서를 분석한 결과, 두 기업이 PFAS의 일종인 PFOA의 위험성을 공개하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환경당국 규제를 지연시키기 위해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PFAS는 각종 생활용품부터 자동차와 반도체 소재로 사용된다. 1940년대부터 상업용으로 생산됐지만 독성은 1990년대 후반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PFAS를 사용한 첫 50년간은 PFAS의 독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듀폰과 3M처럼 PFAS 생산을 주도한 기업들은 인체 유해성과 환경 영향에 대한 공개 조사 결과가 보고되기 최소 21년 전에 각종 연구를 수행했다. 조사 결과 유해성을 확인했는데도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PFAS는 자연에서 분해가 안 되거나 인체에서 잘 배출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포에버 케미칼)’로 불리는 발암성 물질이다. 듀폰이 ‘테프론’이라는 상표로 판매한 화학물질 PFOA는 프라이팬에 코팅하면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아 여러 주방용품 기업들이 이를 적극 도입했다. 실제로 수십 년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가정에서 PFOA를 쓴 조리도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듀폰이 테프론 판매로 거둬들인 수익은 연간 10억달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에선 2002년부터 PFOA의 유해성이 문제가 되자 생산과 사용이 단계적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임산부의 90% 이상이 PFOA에 노출됐다는 보고가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분석에 활용한 자료는 영화 ‘다크 워터스’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롭 빌럿(마크 러팔로) 변호사가 PFAS 오염으로 듀폰을 최초로 고소한 사건 소송을 통해 확보된 기업들의 기밀 자료다. 사건은 1998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한 농장의 젖소 190마리가 죽었다며 한 농부가 빌럿 변호사를 찾아오면서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듀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가운데 암에 걸린 환자들도 속출했다.

빌럿 변호사는 화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가며 PFOA를 구성하는 탄소(C) 고리가 절대 끊어지지 않으며 이런 특성이 심각한 독성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 20년간 빌럿 변호사가 듀폰의 PFOA 폐기물질 유출에 따른 유해성을 파헤친 노력은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우리가 아는 악마(The Devil We Know)’라는 제목으로 제작됐다. 국내에서 2020년 ‘다크 워커스’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 문건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들이 PFAS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최소 20여년간 공개하지 않았다며 이는 PFAS가 최초 사용된 후 40년 이상 PFAS 독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PFAS가 ‘흡입 시 독성이 높고 섭취 시 중간 정도의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해성을 입증하려는 연구들을 억제하고, 왜곡된 정보를 대중에 제공했다. 실제 듀폰은 내부에서 동물시험을 통해 PFAS 독성에 대해 파악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독성물질 규제법(TSCA) 규정에 따라 환경보호청(EPA)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1950~1970년대에 테프론으로 오염된 담배와 관련된 근로자 질병에 대한 여러 사례 및 단면 보고서가 발표됐다.

듀폰의 1961년 내부 보고서에서는 독성 책임자인 도로시 후드가 쥐를 대상으로 한 독성 시험에서 “낮은 용량으로도 쥐의 간 크기를 비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이는 가장 민감한 독성 징후로 인식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 모든 물질을 매우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하며 피부와의 접촉도 엄격히 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1979년 듀폰의 비공개 보고서에서도 일련의 동물 실험을 수행하여 다양한 독성을 입증했다. 당시 연구에서는 PFAS에 노출된 쥐의 일부는 최대 42일 동안 지속되는 ‘각막 혼탁 및 궤양’이 관찰됐다. 또 1980년에 3M의 의료 책임자가 발표한 직업 감시 연구에서는 3M 공장 근로자의 혈액에서 불소화합물 수치가 높아진 것을 발견했다. 이와 함께 1961년 캐나다의사협회지(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열에 의한 테프론 분해 위험성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 물질이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1980년 듀폰과 3M은 C8(PFOA) 생산공장에서 근무했던 임신한 직원 8명 중 2명이 선천성 기형아를 출산한 사실을 파악했다. 1981년 작성된 내부 문건에서도 “관찰된 태아의 눈 변화는 C8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듀폰은 화학 물질에 노출된 구역에서 일한 여성 직원들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이 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결과를 직원이나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1994년 C8을 제조하는 3M 시설에서도 ‘전립선암 증가 가능성’이 보고됐다. 1만2034개의 알려진 PFAS 변종 중 2개인 PFOS 및 PFO9는 다양한 건강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 제기된 초기 소송은 2001년 화해로 끝났지만, 당시 듀폰이 7100t 이상의 유해 물질 함유 침전물을 원고의 소유지와 오하이오 강에 투기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유해물질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 오하이오 강과 지역 수원으로 들어갔다. 2004년 미국 환경청(EPA)은 이 증거를 바탕으로 기업이 제조, 처리 또는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화학 물질에 대한 실질적 위험을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독성 물질 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듀폰을 추적했다.

소송이 끝난 것은 아직 아니다. 연구팀은 “EPA가 2004년 듀폰에 PFOA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은폐한 것에 대해 민사 벌금으로 1645만달러를 부과했으나 이는 2005년 듀폰이 PFOA 등으로 벌어들인 연간 매출 연간 10억달러의 2%에 미만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2018년 미국 10개 주에서 PFAS에 노출된 미국 거주자를 대신해 3M과 듀폰을 포함한 제조업체를 상대로 전국적인 독성 불법 행위 소송이 제기됐다. 이것이 인정되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 소송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PFAS에 대한 노출을 규제하는 일관된 규정은 없다. 논문 제1저자인 나디아 가버 박사는 “주요 화학 업체들은 제품이 안전하다고 대중에게 전달하면서 제품의 해로움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왜곡하거나 숨기는 데 주력해 왔다”며 “공중 보건의 이익을 위해 기업들은 과학자들에게 데이터를 공유하고, 개방형 과학 표준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자료

Annals of Global Health(2023), DOI https://annalsofglobalhealth.org/articles/10.5334/aogh.4013#B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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