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중개인도 책임 60%…법원, 이례적 판결

김현수 기자 2023. 6. 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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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30% 수준서 책임 범위 대폭 확대
전세사기 심각한 현재 상황 반영한 듯
지난 1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내부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임대차보증금 액수가 실질 매매대금을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를 중개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임차인 손실액의 60%를 책임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간 법원은 깡통전세를 중개한 중개업자에 대한 책임 범위를 20~30% 수준만 인정해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으로 치닫는 현 상황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2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법 민사11단독(정선오 부장판사)은 지난 4월 임차인 A씨가 부동산 중개인 B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임차인에게 108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9년 7월 전북 전주에서 부동산을 찾던 중 B씨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다가구주택(원룸)을 소개받았다. 당시 B씨는 “토지와 건물이 10억원 수준이고, 보증금 합계가 토지 매매가의 4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 모든 원룸의 임대차보증금 합계가 1억2000만원이라고 알렸다.

A씨는 이런 설명을 듣고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한 3500만원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당시 B씨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선순위보증금을 1억2000만원으로 기재했다.

그러나 A씨는 계약을 체결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1800만원을 떼였다. 원룸 건물이 강제경매에 넘어가 A씨에게 우선변제금 1700만원만 지급된 탓이다. A씨가 배당내용을 확인해 보니 전세계약 체결 당시 선순위 보증금 합계는 설명서에 기재된 1억2000만원이 아니라 그보다 4배에 가까운 4억4800만원이었다.

전세금의 절반가량을 떼인 A씨는 B씨와 협회를 상대로 1800만원을 돌려달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재판과정에서 임대인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임대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또 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은 선순위 보증금 정보를 주민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지만 공인중개사는 열람할 수 없어 본인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설령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상 실무적으로 적용되는 임차인 손실액의 30%만 책임을 지면된다고 주장했다.

A씨를 대리한 공단 측은 중개인 B씨가 선순위 보증금 액수를 허위로 설명했고, 임대인이 정보제공을 거부한 사실을 서면으로 임차인에게 알리거나 설명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결국 법원은 B씨의 책임 범위를 임차인 손실액의 60%로 책정, 108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전세사기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중개인과 그 협회에 대해 더욱더 무거운 책임을 물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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