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발사 실패의 쓴맛 본 김정은, 불면의 밤 더 보낼 듯
재발사 실패 시 부담 커 상당한 시간 필요할 듯
(시사저널=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5월31일 새벽 평북 철산군 동창리 해안 지역. 일출과 함께 로켓발사장 모습이 훤히 드러나자 한미 대북정보요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형 발사대 쪽에 쏠렸다. 대북 감시에 동원된 미 첩보위성 키홀(KH-12)이 특히 주목한 건 발사대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새로 들어선 천막형 임시 건물이었다. 이 주위로 삼엄한 경호가 펼쳐졌고 소형 버스와 승용차 등이 늘어선 가운데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만가드 차량이 포착됐다. 뒷문에 황금빛 엠블럼이 새겨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차량이었다.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참관하기 위해 최고지도자가 직접 방문한 현장에는 긴장이 흐르는 듯했다.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오전 6시27분 발사대에 세워졌던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서 화염이 뿜어지며 3단 모양의 동체가 솟구쳐 올랐다.
북한의 장거리 추진체 발사에 가장 민감하고 발 빠르게 대응한 건 서울과 도쿄였다. 며칠 전부터 거의 실시간으로 동창리 움직임을 파악해온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즉각 발사체 궤적 추적에 들어갔고, 용산 대통령실과 군 수뇌부에 보고됐다. 동시에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새벽 알람이 울렸다. '김정은의 모닝콜'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왔고, 일부에서는 미사일인지 지진인지 구분할 수 없는 부실한 정부의 문자경보에 분통을 터트렸다.
일본도 북한 발사체가 열도 남단 오키나와 상공을 통과하거나 낙하물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에 해당 부처가 대응에 나서고 NHK를 비롯한 방송은 속보 체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발사대를 떠난 지 얼마 후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군사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리겠다며 쏜 발사체는 정상 도달 거리의 4분의 1도 가지 못한 채 400km 정도를 날아가다 추적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실패였다. 북한도 발사 1시간38분이 지나 "조선 서해에 추락했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문의 제목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 발생'이었다. 완전한 실패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北 군부 실세는 하루 전까지도 "6월에 쏠 것"
북한의 이번 위성발사 시도는 몇 가지 의문점을 남겼다. 무엇보다 발사 시점을 5월31일 새벽으로 최종 결정한 대목이다. 발사 하루 전인 5월30일 오전 북한군 실세인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정찰위성 발사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6월에 곧 발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정은 위원장은 동창리를 찾아 발사 버튼을 눌렀다.
물론 북한은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5월31일 0시부터 6월11일 0시 사이에 위성을 쏠 것"이란 계획을 통보했다. 이 기간 중 어느 때라도 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날 발사가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핵·미사일 등을 총괄하는 리병철이 '6월 발사'를 언급했는데도 굳이 5월에 쏜 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뭔가 엇박자가 났거나 긴박한 상황 변동이 있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 당국의 허를 찌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지만, 대북 정보 관계자는 "동창리 발사장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 먼저 발사한다고 한미의 대처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고 귀띔했다.
어떤 경우든 최종결정권자인 김정은이 위성 발사를 서두르다 일을 망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에 자극받은 김 위원장이 하루라도 빨리 이를 만회하려 준비가 부실한 상황에서 발사 버튼을 눌렀다가 탈이 났다는 지적이다.
2021년 1월 열린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가까운 기간 내 군사정찰위성 운용"을 공언한 김정은은 올 들어 부쩍 이를 채근했다. 4월18일 딸 김주애와 국가우주개발국(NADA)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제작·완성된 정찰위성 1호기를 계획된 시일 안에 발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5월16일에는 위성발사준비위를 찾아 "정찰위성 발사는 절박한 요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탑재 완료'까지 선언하고도 위성 발사는 시간이 걸리는 모양새였고, 5월25일 한국이 독자기술로 개발한 누리호를 쏘아올려 차세대 소형위성 2호를 목표궤도인 고도 550km에 정확하게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수를 빼앗겨 스타일을 구긴 셈이 된 것이다.
북한의 무리수는 실패를 인정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도 엿보인다. 발사를 주도한 우주개발국 대변인은 위성운반로켓인 '천리마-1형'에 장착된 신형 엔진의 신뢰도와 안정성이 떨어지고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천리마-1형' 로켓의 엔진과 연료 체계를 새로 바꾼 상황임에도 제대로 된 실험이나 검증 절차 없이 서둘러 발사가 강행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동창리에서 쏜 로켓이 초기에 중국 쪽을 향하다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도록 궤도를 설계한 대목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문가들은 발사체 잔해와 페어링(보호덮개)을 한국 측이 회수하지 못하게 중국 해역에 떨어트리려는 의도라고 해석하지만, 결국 실패해 한국군이 이를 건져 올리는 상황을 맞았다. 국가정보원도 5월31일 국회 정보위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경로를 설정하면서 횡기동을 통해 동쪽으로 무리한 경로 변경을 하다가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중 관계 악화에 시진핑 눈치 안 보고 발사
비록 실패했지만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시도는 한미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과 압박을 불렀다. 한·미·일 3국 북핵 수석대표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즉각 "국제법을 위반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발사를 결국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같은 날 "우리는 계속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해 김정은과 그의 체제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규탄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중국은 확연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쌍궤병진(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병행)'을 강조하면서 "대화를 재개해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중국의 태도가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이 북한의 잇단 핵과 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대북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감싸고 돌자 김정은이 막무가내로 도발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얘기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이 한·미·일 공조가 부쩍 복원·강화되자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북한의 도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이를 간파한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실패 만회를 위한 재발사를 공언하고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6월1일 담화에서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궤도에 정확히 진입해 임무 수행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강행을 시사했다. 김정은의 체면을 세우려면 서두르는 게 필요하다. 이번에 추락한 로켓과 위성체의 복제품을 만들어 두었다면 점검 절차를 거쳐 비교적 빠른 시일 내 발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2년 4월 '광명성 3호' 위성을 쏘았다가 실패한 후 재발사에 8개월이 걸린 점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재발사가 실패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정원은 로켓 발사 실패 당일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4월 해외에서 최고위급 인사의 불면증 치료를 위한 졸피뎀 등 최신 의료 정보를 집중 수집한 점을 들어 김정은이 상당한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말보로·던힐 등 외국 담배와 고급 안주를 수입해간 것으로 볼 때 알코올과 니코틴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위성 발사에 성공해 체면치레를 하기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꽤나 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누리호는 우주 궤도 안착, 북한 위성은 추락…무엇이 성패 갈랐나
한국의 누리호와 북한의 위성발사체 '천리마-1형'은 3단 구조에 액체연료 사용 등 기본적인 원리나 기술 체계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구조나 환경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엔진을 살펴보면 누리호는 단일 체임버(연소실)를 가진 시스템이며 엔진 한 개의 추진력이 75톤이다. 모두 4개의 엔진이 300톤의 하중을 밀어올릴 수 있는 추력을 갖는 것이다. 북한의 천리마-1형은 하나의 터보펌프로 두 개의 연소실에 연료를 공급하는 듀얼 체임버 체제다. 추력 80톤의 백두산 엔진 2개가 달려 160톤의 추력을 내는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수치로만 봐도 누리호가 천리마보다 2배가량 강력한 추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누리호는 2단에 75톤의 엔진, 3단에는 7톤짜리 엔진을 각각 한 개씩 달고 있다. 북한 천리마-1형의 경우 2단은 백두산 엔진 1개, 3단은 3톤급 소형 액체엔진 2개가 달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3단을 통틀어 볼 때 한국의 누리호가 훨씬 높은 추진력으로 안정성 있는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료는 남북한 모두 액체연료를 쓰고 우주에서 연료가 쉽게 착화되도록 산화제를 사용하는데 여기에도 차이점이 있다. 북한은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UDMH)과 사산화이질소를 주로 사용하며 산화제는 적연질산을 이용한다. 누리호의 경우 연료는 케로신(등유), 산화제는 액체산소를 쓰는데 액체산소의 경우 영하 183도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주입한 후에는 곧바로 발사해야 하는 제약이 따른다.
누리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과 발사를 주도했지만 북한의 경우 국가우주개발국(NADA)과 군사정찰위성발사준비위가 담당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의 누리호가 과학기술을 집약시킨 로켓 발사 성공으로 '우주 G7(주요 7개국)'이란 찬사를 받은 데 반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유엔 대북 제재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위반하고 발사를 감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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