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 마시고 전투기 가질래”...‘0’이 많아질수록 오류 빠지는 인간 [Books]
이 두툼한 수학책의 서문은 1995년 펩시의 포인트 판촉행사에서 시작된다.
펩시는 10센트(약 130원)에 펩시 1포인트를 지급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티셔츠는 75포인트, 선글라스는 175포인트, 가죽 재킷은 1450포인트.
펩시는 이 광고에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해리어’란 이름의 전투기의 교환가를 700만 포인트로 정했다. 마케팅용 농담이었지만 존 레너드란 시청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레너드는 계획에 인생을 ‘올인’했다. 대리인을 시켜 진짜로 포인트 구매를 실행한 뒤 펩시더러 전투기를 내놓으라고 했다. 레너드의 원대한 계획은 소송 끝에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법사학에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신간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은 숫자를 둘러싼 인간 오류의 역사를 되짚는 책이다. 위 사례에서 펩시의 오류는 뭐였을까.
이건 마케팅 당사자의 간단한 계산 착오가 아니었다. 인간이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인식한다는 걸 간과한 결과라고 저자는 본다. 인간은 1과 2 사이, 2와 3 사이의 간격을 동일하게 여기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100만과 10억, 10억과 1조로 넘어가면 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숫자가 너무 커서다. 전투기 교환 포인트는 700만 포인트가 아니라 ‘7억 포인트’였어야 했다.
숫자를 둘러싼 인간 역사는 계속된다. 이번엔 달력이다.
러시아는 유럽이 몇백년 전 도입한 그레고리력 대신에 오류 가득한 율리우스력을 고집했다. 1918년이 돼서야 러시아는 다른 나라와 날짜를 맞추려 그레고리력으로 바꿨다. 문제는 간극이 무려 ‘2주’나 됐던 것. 러시아는 2월의 첫날을 1일이 아니라 14일로 정했다.
이 때문에 1월 31일 달력을 찢으면 바로 밸런타인데이(14일)가 됐다. 러시아인은 인생에서 보름이 통째로 사라졌고, 달력 장사꾼만 수지맞은 것.
미국에선 몇 해 전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밈(meme) 하나가 떠들썩하게 돌아다녔다. “미국시민은 317백만 달러, 오바마 케어 도입은 360백만 달러. 그럴 바엔 한 사람당 백만 달러를 나눠줘!”
언뜻 보면 1인당 100만 달러를 주는 게 차라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전히 틀린 얘기였다. 돌아가는 돈은 인당 100만달러가 아니라 1달러다. ‘백만(million)’을 숫자가 아니라 단위로 쓰니 어처구니없는 문장이 나돈 것인데, 당시 밈의 치명적 오류를 인지하는 이는 적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컵에선 콜롬비아와 파라과이 선수들이 경기 시작도 전에 큰 웃음을 터뜨렸다. 공수를 결정하는 동전 던지기 결과,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영국 1파운드 동전이 잔디 위에 정확히 수직으로 꽂혀서다.
저자는 이 기막힌 확률을 실험하고자 동전을 1만번 던졌고, 그중 ‘13번’ 수직으로 섰다는 결과를 책에 쓴다.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가족과 친구를 뒤로하고, 혼자 방 안에 앉아 며칠째 계속 동전을 던졌다는 괴짜 저자의 유쾌함이 책의 흥미를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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