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낙인 없는 브랜드를 위하여!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입력 2023. 6. 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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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는 바이슨(Bison)이라는 들소가 있다. 신대륙 발견 후 무차별 사냥으로 그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보호 동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고기와 우유를 위해서는 스코틀랜드와 스페인에서 앵거스(Angus)라는 품종의 소를 수입하여 광활한 대지에서 방목으로 사육했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들은 텍사스에서 대규모 소떼를 중북부 주까지 몰고 가서 방목하였고, 대륙 횡단철도의 완성 후에는 소떼를 기차역까지 데려가 인도하는 일을 주로 했다. 광대한 평원에 소를 방목하니 이웃 농장의 소와 식별되도록 주인마다 고유의 기호나 문자 또는 디자인으로 소 엉덩이에 불 도장 즉, 낙인(烙印)을 했다. 그 낙인이 ‘브랜드’이다. 브랜드(Brand)의 어원은 노르웨이의 옛 말 BRANDR이고, 그것은 ‘태운다(Burn)’라는 의미가 있다. 비단 가축 뿐만 아니라 벽돌, 위스키 술통, 기와 등에도 낙인을 찍어 제작자와 품질을 나타내는 것은 예로부터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노예, 죄수, 비윤리적 파렴치한의 몸에도 불 도장 또는 문신을 하는 스티그마(Stigma)는 동서양 공통적 형벌이고 소유권의 표시였다.

낙인이든 스티그마이든 부정적인 의미는 한껏 들어 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거나, 무시당하거나, 범법자로 한번 낙인 찍히면 그런 부정적 행태를 다시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 또는 ‘낙인효과’라 한다. 이는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가 1960년에 주장한 이론이다. 낙인 효과가 부정적 인식의 부정적 결과를 의미한다면 반대로 긍정적 인식의 긍정적 결과를 의미하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도 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늘 따돌림을 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여자를 싫어하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조각상이 진짜 사람인 양 매일 대화하면서 사랑하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에 여신은 감동하여 그 조각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니, 둘은 딸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교육적 효과의 그리스 신화이다. 낙인 효과와 피그말리온 효과의 차이는 그 주체이다. 전자는 주변 제 3자들의 나쁜 시선과 인식이 부정적 효과의 원인이고, 후자는 본인의 간절한 바램이 긍정적 효과의 원인이다.

비록 브랜드의 유래가 소 주인을 표시하기 위한 엉덩이의 낙인으로 시작된 단순한 것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브랜드는 복잡한 존재이고 긍정적 효과를 목표로 하는 귀중한 자산으로 발전되었다. 브랜드에는 제품의 속성, 이미지, 이름, 가격, 품질, 역사, 철학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심리 등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복합적 상징이다. 이에 미국 마케팅학회(America Marketing Association)는 브랜드란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확인해 주고 타인의 것과 분명하게 차별 짓기 위한 이름이나 용어, 디자인, 심벌 또는 이들의 조합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상표(Trademark)는 브랜드명과 그 도식적 디자인을 국가 기관에 등록하였을 때 제 3자의 무단 사용을 금하는 효과의 법적 보호를 받는 브랜드이다.

현대 경영에서 왜 브랜드는 기업의 이미지와 지속적 발전을 좌우하는, 한마디로 기업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중요한 가치가 내포된 무형자산이 되었을까? 세계 유수 메이커들의 경쟁 상품 간에는 이젠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제조방법과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기존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와, 그들과 비하면 아직 어린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의 제품이나 제품의 성능과 품질에서 차이는 없다. 비교 제품을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 등으로 검증한 결과 소비자들도 차이 없음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의 선택 기준은 자동차의 품질, 성능, 내구성 또는 AS 등 상품의 기능적 면이 아니다.

제품이 가진 기능을 중요시하는 ‘기능적 소비’가 아닌, 그 브랜드가 부수적으로 선사하는 소비자의 주관적 만족감 즉 브랜드 이미지나 브랜드 취향을 더 중요시하는 ‘기호적 소비’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혹자는 자동차의 경우, 차의 기능적 면인 ‘승차감’ 보다는 차에서 내릴 때 그 브랜드 사용자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하차감’이 자동차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는 말로 이 점을 설명한다. ‘하차감’이 ‘승차감’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소비자의 심리는 브랜드의 상징성, 인식(Brand Awareness), 연상(Brand Association) 등에 더 큰 가치를 두고, 궁극적으로는 브랜드 로열티(Brand Loyalty)를 통한 귀속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대중에게 인식되었다면, 그 브랜드는 가격을 올리더라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누릴 것이다. 베블런 효과를 누리는 브랜드 리더의 또 다른 부수적 혜택은 ‘클레임으로부터 보호’이다. 독일이 낳은 경영학계의 석학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은 “나는 싼값에 산 브랜드에 대해서는 짜증을 내지만, 비싼 값에 산 브랜드 제품에 대해서는 거의 짜증을 내지 않는다”라고 솔직히 말하면서 브랜드 파워와 그 최면 효과를 말했다.

‘신제품 또는 신설 회사의 경우 브랜드는 어떻게 구축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는 수많은 학자 및 마케팅 전문가들의 공통된 과제이고 화두이다. 마케팅의 힘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이다. 어떤 이는 마케팅의 이런 파워를 강조하여 “마케팅이란 닭다리를 두들겨 펴서 오리발이라고 하여 파는 것이다”라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러나 마케팅의 본질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미지를 향상 시키는 데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마케팅 전문가에게 브랜드란 ‘의미를 채워 넣어 꾸미고 가꾸어야 할 빈집’ 같은 것이다. 그 텅 빈집을 채우는 데 광고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못된 브랜드 광고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도 그 집은 ‘모호함과 불신’으로만 가득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유명한 경영학자는 지적한다.

파괴적 혁신이론의 주창자이며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은 위와 같이 지적하면서, 그의 저서 <파괴적 혁신 4.0>에서 “해마다 3만 종의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중 90%는 실패하는 데 그 이유는 목적성 브랜드(Purpose Brand)의 구축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목적성 브랜드’란 그 제품의 사용자라 생각되는 ‘통계적 일반 평균 고객’을 상정하지 말고, 특정 목적으로 세분화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위한 브랜드’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브랜드, ‘과시성이나 하차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처럼 고객이 원하는 명확한 특정 목적이 그 브랜드와 연계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도 만족하고 ‘하차감’도 만족시키는 ‘포괄적 브랜드’를 구축하려고 소비자에게 그렇게 커뮤니케이션하면 오히려 혼란과 불신을 주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목적성 브랜드’ 론의 요체이다.

목적성 브랜드로서 일단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그 파생 효과는 대단하다. 그 좋은 이미지의 리더십 덕분에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Persona)로 고객의 로열티(Loyalty)를 받을 수 있으니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또 성공한 목적성 브랜드는 고객의 관심을 꾸준하게 받으므로 상대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도 유기체인 생물(生物)인지라 욕심을 내서 이것 저것 다 만족시키려는 포괄적 브랜드로 빠지는 오류를 부지불식 간에 저지르기 쉽다. 그로 인해 브랜드 정체성과 이미지에는 간극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이 브랜드의 관리 실패인데, 그렇게 한번 소비자한테 낙인 찍히면 스티그마 효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피그말리온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추락하는 브랜드에는 날개가 없다. 오직 세분화된 고객의 세분화된 목적을 겸허히 알아차리고 다시 점프하는 수밖에 없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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