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은 소리는 라잇 나우죠"…작창 세계의 젊은 샛별들 [조재현의 조명]

조재현 기자 2023. 6. 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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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작창 도운 소리꾼 장서윤·박정수
상인들의 배처럼 전진…창극단 작품 작창도 맡는다
국립창극단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에서 작창보로 나선 박정수(왼쪽)와 장서윤 /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극 중 인물의 말을 맛깔나게 전달하는 것. 그게 좋은 작창이라고 생각해요."(장서윤)

"화려하지 않은 날 것이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듯 진심이 담긴 작창을 좋아합니다."(박정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등 국립창극단 대표작의 소리를 빚어낸 '작창(作唱)의 신' 한승석(55)과 작창계 샛별이 만났다. 오는 8~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에서다.

샛별에 달린 이름표는 작창보(補). '소리를 짓는다'는 뜻의 작창을 돕는 역할이다. 지난해 신진 작창가 발굴을 위한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에서 재기발랄하고 참신한 재능을 선보인 소리꾼 장서윤(32)과 박정수(24)가 그 주인공이다. 동시대 가장 핫한 작창가와 반년 가까이 호흡하며 어떤 소리를 빚어냈을지, 이들을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 "'판소리 콘서트' 같은 '베니스의 상인들' 기대하세요."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돈을 빌리러 온 무역업자 안토니오에게 가슴살 1파운드를 담보로 거는 것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안토니오는 벨몬트 섬의 상속녀 포샤와 사랑에 빠진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이같이 움직인다.

작창계 '현재'와 '미래'가 만나서일까. '베니스의 상인들'에는 국립창극단 역대 작품 중 가장 많은 62개의 곡이 흐른다. 이로써 내로라하는 창작진(연출 이성열·극본 김은성·작곡 원일)과 창극계 간판 배우들(유태평양·김준수·민은경·김수인)이 풀어내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한층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포즈를 취한 신진 작창가 장서윤(왼쪽)과 박정수 /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작창은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기반으로 극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으로, 판소리가 중심이 되는 창극 전반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 요소다.

작창보란 이름표를 달고 지낸 6개월 동안 이들도 시나브로 성장했다. 고심 끝에 뽑아낸 아이디어가 스승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 우수수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오롯이 홀로 피워낸 소리도 있다. 극 중 사랑에 빠진 바사니오와 포샤 커플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사랑을 이루는 내용에 맞춰 박정수가 지은 소리는 커튼콜을 장식한다.

"대본을 보자마자 아이디어가 떠올라 말씀드렸는데 (한승석) 선생님께서 해보라고 하셨어요. 성심껏 만들었는데 '괜찮다'라고도 해주셨습니다. 생각하고 그린 대로 무대에 올라가게 돼 기뻐요." (박정수)

극 중 배경인 베니스와 대비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공간인 벨몬트를 소개하는 대목은 장서윤이 책임졌다. 벨몬트는 자유·사랑으로 서로를 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여성들이 불렀을 때 굉장히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구조로 소리를 짰어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가벼운 목소리와 유려한 시김새를 뽐낼 수 있는 정가적 요소를 썼죠."(장서윤)

샤일록의 등장이나 안토니오가 옥에 갇혔을 때 나오는 합창 대목 등에도 이들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녹아들었다. 감칠맛 나는 작창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인 원일(56)은 록, 팝, 헤비메탈, 전자음악 등 대중적인 색을 입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작창은 텍스트의 상황과 정서를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 첫 단계는 대본 분석이다. 소리로 표현할 대목을 골랐다면 그 상황에 어울리는 장단을 정한 뒤 텍스트가 가진 힘과 분위기를 살리는 소리를 입힌다. 텍스트를 분해해 어순을 바꾸거나 적절한 장단이 없다면 기존 장단을 변주하고, 새 장단을 짜기도 한다.

최근 10여 년 사이 국립창극단의 작품이 동시대 공연예술로서 주목받은 데에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작창이 있었다. "작품을 보면 판소리라는 장르가 고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어요. 지금 시대와 잘 맞닿은 느낌이죠." 장서윤의 답변을 들은 박정수는 이같이 말했다. "'베니스의 상인들'의 소리는 그냥 '라잇 나우'(바로 지금)입니다."

포즈를 취한 신진 작창가 박정수(왼쪽)와 장서윤 /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우리 소리 잘 전하는 소화제 같은 역할 할래요"

장서윤과 박정수는 대학·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이다. 장서윤은 국립창극단 인턴 단원으로 무대에도 올랐었다. 다만, 무대 위 보다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박정수 역시 동시대성을 반영해 본인 만의 소리를 만들고 싶었다. 이후 작창가 프로젝트에 선발되며 작창의 세계에 눈을 떴고, 지난해 12월에는 30분가량의 창극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만능 재주꾼으로서 싹도 보인다. 작창을 돋보이게 할 음악까지 손수 뽑아낸다. 같은 장단을 쓰더라도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기에 자신 만의 색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를 국악에 녹이고, 말의 리듬을 살리는 것. 서로가 본 강점이다. "정수는 본인이 좋아하는 K팝이나 힙합도 국악으로 살려요. 특히 로맨틱한 분위기의 곡도 잘 쓰는데 평소 성격이 따뜻한 친구라 그런 것 같아요."(장서윤)

"언니가 직조한 소리는 말맛이 살아있어요. 대사에 소리를 붙였을 때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데, 말이 가진 리듬을 재치 있게 발굴하죠."(박정수)

소리꾼이란 정체성은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예술은 계속 흘러요. 판소리는 음악적 어법이나 가사 등이 과거에 머물 때가 많은데, 오늘날에는 지금의 감수성이 필요하죠. 그래야 판소리도 흘러간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원형의 힘은 유지해야 하죠. 제겐 이런 사명이 있다고 생각해요."(박정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누구보다 잘 즐기고 싶어요. 제가 완벽하게 소화해서 진짜 즐긴다면 보는 사람도 흥미를 느끼겠죠. 제가 창작을 하는 이유입니다. 판소리의 매력을 잘 소화해 편안하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장서윤)

작창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는 신진 작창가 박정수(왼쪽)와 장서윤 /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이젠 어엿한 '작창가'…작창가 프로젝트 성과, 정식 공연으로 '얼씨구나 절씨구나 가자 가자 나아가자 / 얼씨구나 어절씨구 저 바다로 나아가자.'

'베니스의 상인들' 속 인물들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자 연대한다. 작품 첫 곡과 끝 곡에도 이런 메시지가 담겼다. 젊은 상인들이 똘똘 뭉치는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원작 제목에 '들'이 붙었는데, 장서윤과 박정수에게도 작창가 프로젝트에 만난 작창·극본 멘토는 물론 작창의 맥을 이으려는 젊은 동료들이 있다. 장서윤과 박정수도 이를 동력 삼아 본인들이 그리던 세계로 한발 더 나아간다. 작창가 프로젝트란 열매를 들고서다.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때 실시한 전문가·관객 평가에서 장서윤과 박정수가 작창한 '옹처', '덴동어미 화전가'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 두 작품은 국립창극단의 정규 공연으로 제작된다. 예비 작창가에서 한 작품을 책임지는 작창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장서윤은 '옹고집타령'을 재해석한 '옹처'에서 각 인물의 성격과 특징, 인물 관계의 질감을 생생한 소리로 극대화했다. 박정수는 조선시대 내방가사에서 영감을 얻은 '덴동어미 화전가'에서 고된 삶을 살아낸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소리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위로를 안겼다.

특히 영화 속 대사나 귀에 익숙한 K팝 가사를 능수능란하게 빌려오며 무대 위 배우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 모두를 흥겹게 했다. 공연화 시기는 미정이지만, 두 신진 작창가는 변함없이 땀을 쏟고 있다.

장서윤은 '전통의 현대화'란 프레임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다. "우리가 만든 창극을 보고 단순히 '세련됐다'는 감상만 남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소리에 이런 맛이 있었구나. 앞으로도 이 재료를 계속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고 싶어요."

박정수는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어떤 삶도 관통하는 얘기를 펼치고 싶어요. 위로나 호의 같은 따뜻한 가치가 퇴색하는 시대잖아요. 그런 마음을 만져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귀한 마음들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소리를 만들게요."

포즈를 취한 신진 작창가 박정수(왼쪽)와 장서윤 /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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