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경보 뒷북 개선한다는데…그렇다면 이제 제대로 대피할 수 있을까 [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3. 6.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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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명목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십수 년 전 미국 연수 중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의 일이다. 등원 첫날 준비물 리스트에 ‘emergency kit’가 있었다. 비상식량과 담요, 손전등, 에너지바, 과일 스낵, 티슈, 물수건, 주스 등을 한데 모은 키트였다. 부모와 떨어지게 될 만약의 상황이 닥쳤을 때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엄마나 아빠가 쓴 편지와 가족사진,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도 키트에 넣어 보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준비물이었다.

지난 2017년 북한이 ‘괌 포위사격’ 등을 거론하며 위협하자 괌 국토안보부가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배포한 비상행동수칙도 인상적이었다. 행동수칙은 사전에 비상물품 키트를 준비하고, 가정비상계획을 세우고, 인근 콘크리트 구조 대피시설 목록을 확인할 것을 권했다. 비상상황이 벌어지면 콘크리트 건물이나 지하로 대피하고, 실명의 위험이 있으니 화구(fireball)나 섬광을 바라보지 말라고 안내했다. 폭풍은 30초 이상 지속될 수 있으니 머리를 낮추고, 샴푸나 비누로 머리를 감되, 컨디셔너는 방사성 물질이 머리카락에 침착되므로 사용하지 말라는 세세한 권고도 담았다. 방사능은 인간이 감지할 수 없으므로 ‘방사능위험지역’ 표시가 된 곳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기억들을 떠올린 것은 지난 31일의 경계경보 소동 때문이다.

북한 우주발사체 발사 직후 서울시민들에게 발송된 재난문자에는 왜,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주요 내용이 모두 빠져있었다. 오발령이라는 행정안전부의 고지와 경계경보 해제 문자까지 이어지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포털 사이트도 제대로 접속할 수 없었고, TV에서도 대피 관련 안내 방송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적이 이어지자 행안부가 경보 시스템을 정비하기로 했다. 육하원칙을 담은 경보를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보시스템만 정비하면 되는 일일까. 어떤 상황에서 무슨 경보가 울리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이웃 나라 일본은 미사일 공격, 지진 등에 대비해 어린 학생들도 수시로 대비 훈련을 한다. 1일 대피령도 우리보다 빨랐고, 안내 문자도 구체적이었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만약 위기 상황이 닥친다면 주기적으로 대피훈련을 하는 일본 학생들과 우리 학생들 중 누가 더 질서 있게 대피할 수 있을까. 이머전시키트를 챙기고 가족사진까지 지닌 미국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중 누가 더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릴 수 있을까. 민방공 훈련을 일시 통행 정지 쯤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성인들과 섬광을 쳐다봐서는 안된다는 안내문을 숙지한 괌 주민들 중 누가 더 안전할까.

답은 뻔하다. 이번 경보소동을 정부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점검하고 국민도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지게 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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