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웹툰시대에도 여전… ‘검정고무신’ 보다 황당 사례 많아”[M 인터뷰]

박동미 기자 2023. 6. 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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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故이우영 대책위원장 활동중 신일숙 만화가협회장
李작가 저작권 반환 등 요구
만화계 현재·미래 위한 싸움
작가들, 2000년대 초반까지
사기같은 계약 수없이 당해
창의력과 재능이 곧 저작권
웹툰 종주국 위상에 걸맞게
제도적 장치도 뒷받침 돼야
‘만화문화연구소’ 등 추진 중
AI 활용한 만화작업도 고민
“30년 넘게 사랑받을 줄 몰랐어요.” 최근 경기 일산 자택에서 만난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속 한 장면 앞에 서 있다. 문호남 기자

국내 순정 만화 황금기인 1980∼1990년대에 10∼20대를 보냈던 만화 독자들은 최근 낯익은 이름 하나를 뉴스에서 자주 들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원작자이고, 순정만화의 고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그린 신일숙 작가다. 1984년 데뷔해 역사, 신화, 판타지와 과학소설(SF) 등을 넘나들며 여성 서사의 폭을 넓혀 온 그는 40년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갑자기 뉴스에 등장하게 된 이유는 지난 3월 세상을 뜬 고 이우영 작가를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 이 작가는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렸지만,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수년간 재판에 휘말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인 신 작가는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 작가의 저작권 원상 복귀, 만화계 관행 근절, 분쟁 당사자들의 사과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우리의 현재를 지키는 싸움이며, 만화계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고 말하는 신 작가를 최근 경기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이 작가 별세 후 석 달이다. 얼마 전 대책위는 1인 시위를 예고하는 집회를 했다.

“분쟁 상대였던 출판사 앞에서 ‘검정고무신’ 장례 집회를 열었다. 만화가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했지만, 정작 그들은 여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이대로는 이 작가의 작품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릴레이 시위를 결정했다.”

이날 집회에는 신 작가를 비롯해 웹툰 ‘가우스전자’의 곽백수 작가,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 등 동료 작가 40여 명, 그리고 팬들과 유가족이 참여했다. 이들이 그린 70여 점의 팬아트가 전시됐고, 이후 그림과 편지를 불에 태우고 묵념하며 이 작가의 넋을 위로했다. 대책위는 “외로운 싸움을 해온 이 작가를 애도한다”면서 “이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싸움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작가도 협회 회원이었다. 재판 과정을 지켜봤을 텐데.

“계약 당시엔 아니었고, 분쟁이 시작되면서 회원이 됐다. 협회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이었지만, 법적인 부분 등 현실적으로 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이 작가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새 작품을 구상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통화도 했는데…. 안타깝고 슬프고, 충격이다.”

―근원적인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과 인식 수준 때문 아닐까. 협회 내에는 ‘검정고무신’만큼, 혹은 더 심각하고 황당한 계약 사례를 경험한 이들이 많다. 만화는 웹툰의 뿌리이고, 한국은 웹툰 종주국이다. 그런데 과거 관행은 여전하다. 재판이 계속되면서 이 작가의 절망이 깊어진 것 같다. 사람을 믿고 한 자신의 선택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고 전해 들었다.”

―2000년대 초반 이미 ‘리니지’로 저작권 소송을 겪은 바 있다.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 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 시대의 관행이 웹툰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가 ‘검정고무신 사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만화가들은 ‘사기’ 같은 계약을 수도 없이 당했다. 그걸 떠올리면 조금 나아진 것도 같지만, 지금 한국 웹툰의 위상이나 관련 기술 발전 속도를 생각해 보라. 창작자의 권리, 저작권 인식이나 법적 제도 마련은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왜 우리는 그 부분은 선도하지 못할까.”

신 작가는 올해 만화가협회장에 재임돼 임기 4년 차에 접어들었다. 팬데믹으로 보류했던 계획이나 과제들을 향해 속도를 낼 생각이다. 그중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한 저작권 교육, 법률 상담 및 지원이 우선순위다. 과거 만화가들은 수차례 직접 계약 문제를 겪고, 스스로 알아서 저작권 관리에 철저해지곤 했는데, 새로운 시대 젊은 작가들은 가능하면 그런 시행착오 없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최근엔 전임 만화가협회장이고,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 등 60여 명의 웹툰 작가들과 함께 ‘저작권 보호 릴레이 한 컷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또 지난 4월 개소한 ‘저작권법률지원센터’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정부의 지원센터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창작자들이 겪는 어려움 대부분이 저작권 관련 불공정 계약이다. 협회가 교육하고 지원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창작자의 권리 문제가 공론화된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센터가 문을 연 것은 시의적절하다. 인공지능(AI) 웹툰도 벌써 나왔고, 앞으로 저작권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논쟁도 많을 것이다. 둘러보라. 한국의 1등 수출품이라고 할 만한 것, 최고의 자원은 ‘사람’이고, 그들의 창의력과 재능이 곧 저작권이 된다. 앞으로 모든 건 ‘저작권 싸움’이다.”

―정작 작가들의 저작권 공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작가,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은 그에 합당한 자세를 갖춰야 하는데, 그중 핵심이 저작권 지식이다. 그런데도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는 딱딱하다고 여겨서인지 참여율이 저조한 편이다. 아예 만화 등 창작 관련 학과에서 저작권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으면 한다. 그냥 사회에 내보낸 후 알아서 계약을 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회 차원의 교육이나 세미나는 왜 효과가 미미했나.

“사실 만화가협회는 ‘친목’으로 시작했고, 오랜 세월 그 성격이 강했다. 강력하게 끌고 나갈 구체적인 목적이나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 변화 흐름을 따라야 할 것 같다. 웹툰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협회의 성격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이 바라는 협회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최근 회비도 2배로 올렸는데, 역시 이런 일엔 반발이 따르더라(웃음).”

만화 독자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과도 같은 신 작가는 종이 만화책 전성기에 데뷔해 잡지 시대를 지나, 웹툰의 세계까지 건너오며 한국 만화 시장의 흥망성쇠 한복판에 있었고, 1990년대 말 일본 문화 개방으로 가공할 규모의 일본 만화에 밀려 속절없이 사라지는 작가와 작품들을 지켜봤다. 손으로 하나하나 하던 작업을 ‘스크린톤’이라는 기계가 대체했고, 그 성능은 진화를 거듭했으나 웹툰이 등장하며 아예 사라졌다. 신 작가는 창작자들은 매번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과 싸워야 했다고 전한다. 그는 만화·웹툰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 역시 AI라면서, 또 한 번 크게 ‘판’이 요동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창작자로서 출판, 만화의 패러다임 변화를 체감한 세월이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자꾸 판이 흔들렸다. 시장이 여러 번 무너지고, 다시 성장하는 걸 봤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뒤처지기에 필요에 의한 변화를 숨 가쁘게 좇아왔다. 사진기가 나오면서 초상화 화가들이 사라진 것처럼, 새로운 것이 나오면 항상 무언가는 없어진다. 그래도 정말 잘 그렸던 화가들은 살아남았을 텐데, AI 시대에 그게 더 심화하지 않을까. 어중간한 기술, 어중간한 예술로는 그저 휩쓸려 다닐 뿐이다.”

―AI로 인한 위기감이 있을 텐데, 협회 차원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단순히 AI 때문만은 아닌데, ‘만화문화연구소’를 조직 중에 있다. 재원 부족으로 아직 본격화하진 못하고 신탁 준비 중이다. 체계를 갖추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만화 문화’를 연구하고 공부할 것이다.”

―연구소의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그야말로 만화 문화를 계속 연구하겠다는 것인데…(웃음). 예를 들면 얼마 전 한국 SF 만화의 거목이신 고유성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분의 삶이나 작품, 만화사적 의미 등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없더라. 후배로서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 지금의 웹툰이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지 않나. 종이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웹툰의 주역들이 됐고, 이제 또 웹툰을 보고 자란 세대가 또 어떤 새로운 세계를 열지 모른다. 모든 창작엔 다 뿌리가 있는데, 그 연결 작업을 우리가 하려는 것이다.”

―만화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웹툰 연재를 마친 지 2년인데.

“2년 동안 카카오페이지에서 ‘카야’를 연재했다. 죽는 날까지 좋은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AI를 활용해 만화를 그리는 걸 고민 중이다. 순수한 호기심도 있고, 만화가협회장으로서 일단 먼저 겪어봐야겠다는 의무감도 있다. 그래야 요즘 작가들이 무얼 고민하는지 알고, 또 미래 작가들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나.”

“인생작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 3년에 한 번 정독… 현대물은 몰라서 못그렸죠”

■ ‘40년차 현역’ 신 회장

“네 딸 중 닮은 인물 꼽자면…
악착같은 면 있는 막내 샤리”
‘리니지’ 원작자로도 유명해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은 1984년 ‘라이언의 왕녀’로 데뷔, 순정 만화 전성기인 1980∼1990년대 전복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한국형 온라인 게임 대표 성공 사례인 동명의 만화 원작 ‘리니지’를 비롯해 ‘파라오의 연인’과 장편 대서사시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1986∼1996 연재)이 대표작이다. 주요 특징은 신화와 환상, 역사가 뒤섞인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여전사’ 샤르휘나와 ‘철의 여왕’ 레 마누를 통해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성장·해방의 서사를 그려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동시에 받았다. 수많은 순정 만화 독자들이 ‘인생 만화’로 꼽고, 신 회장에게도 ‘인생작’이다. 그는 완결된 지 30년도 더 된 이 작품을 “3년에 한 번은 정독한다”면서 “점점 독자들의 마음이 되어 간다”고 전했다. “큰돈을 벌게 해준 만화는 아니에요. 매절 계약을 했고 얼마나 팔렸는지도 잘 몰라요. 그래도 아직 기억해주는 독자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죠.”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작품임을 지난 2021년 북펀딩을 통해 진행한 복간판 재출간 때 스스로 증명했다. 20권 세트(16만 원)가 3주 만에 선판매 1억 원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다. 10∼20대였던 독자들이, 경제력을 갖춘 40∼50대가 되어 구매를 이끌었고, “이제 딸과 함께 읽는다”는 후기들이 들려왔다. 신 회장은 “항상 10년 뒤에도 읽히는 작품을 하자며 그리지만, 30년이 지나서까지 읽힐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만화는 모계사회인 가상의 왕국에서, 여왕의 자리를 두고 네 자매가 겨루며 각자의 모험과 고난에 도전하는 줄거리다. 신 회장은 “네 딸들 중에 굳이 꼽자면 막내 ‘샤리(샤르휘나)’를 닮았다”고 했다. “샤리는 추방당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해요. 그런 면이 저와 비슷해요. 저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내가 하려는 걸 이루려고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샤리’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다. 작품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행보만 봐도 그는 정말 ‘샤리’를 닮았다. 웹툰 작가와 만화가들의 권리 보호와 증진을 위해 만화가협회를 이끄는 신 회장은, 1990년대엔 한국여성만화가협회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여러 사건이 발단이 됐으나 여성 만화가들이 남성 작가들보다 훨씬 적은 고료를 받고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됐다. 그는 “실력과 만화의 인기에 따라 고료가 달라져야 하는데 ‘여성’이라서 덜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면서 “만화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남성의 문제가 됐기 때문에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웹툰으로 시장이 넘어온 지금은 당시의 문제가 거의 사라져 결성 당시의 목적은 사라졌다고 했다. “단체도 그때그때 제 역할이 있죠. 이제는 만화가협회에 주력할 때인 거고요.”

그가 쓴 작품 대부분은 시공을 초월한 환상에 기대고 있다. 혹시, 그래서 지금도 사랑받는 것일까. 현대물을 거의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신 회장은 “몰라서 못 그렸다”며 웃었다. “20∼30대에 만화만 그렸어요. 일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 했고요. 현대인들의 사랑, 우정, 일상은 그리기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열광하는 모든 장면이 다 제 ‘상상’들이랍니다(웃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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