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재난 웹툰의 최종 완성은 댓글이다 [K콘텐츠의 순간들]

박인하 2023. 6. 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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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재난을 다룬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생존을 위한 다양한 분투를 보여주되, ‘사이다’로 응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평범한 인물에게 눈에 보이는 애정을 쏟는다.
네이버 웹툰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서울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 바이러스 재난에 처한 이야기를 다룬다.ⓒ네이버 웹툰 갈무리

쥘 베른의 소설 〈15소년 표류기〉(1888)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소년 열다섯 명이 무인도에 고립되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1554)에서는 고립된 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주목했다. ‘고립-생존’ 서사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을 습격하는 낯선 존재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끈 웹툰 〈스위트 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고립된 곳에 괴물과 좀비를 등장시켜 생존의 조건을 더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네이버 웹툰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제목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다. 천안에 있는 중앙고 1학년 3반 학생 25명이 서울에 수학여행을 온다. 주인공 이연우는 “2시간 동안 버스를 타는 건 좀 지루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왜냐면 소연이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라고 수학여행의 평범한 감상을 전한다. 경복궁, 청계천을 방문하며 수학여행 일정을 소화하는 1학년 3반 학생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연우는 청계천을 지나다 이상한 생명체가 비둘기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2화에서 1학년 3반 학생들은 N서울타워에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다. 순간 모든 휴대전화에 긴급재난 문자 알림이 도착하고 케이블카엔 ‘세포’에 감염된 비둘기가 돌진한다. 정거장에 도착해보니 케이블카 한쪽에 동그랗고 꿈틀거리는 세포들이 마구 붙어 있다. 이렇게 재난은 구체화되었다. 세포와 접촉한 생물은 몸에 세포가 증식하고, 몸을 세포에게 빼앗겨버린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좀비와 다르다. 세포에서 시작된 낯선 존재가 신체를 잠식하는 과정을 보면 ‘신체 강탈’이 더 정확해 보인다.

갑자기 시작된 재난으로 인해 타워에 먼저 올라간 팀과 케이블카에 타고 있는 팀 등으로 그룹이 나뉜다. 두 그룹에서 세포와 접촉해 신체를 강탈당한 학생들이 빗발친다. 연우는 소연이와 함께 세포에 잠식당한 가을이를 피해 케이블카로 피한다. 세포에 감염돼 신체를 강탈당한 존재는 인간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공격한다. 학교를 벗어나 행복했던 연우에게 수학여행은 단 2화 만에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다. 주인공 연우를 비롯한 1학년 3반 학생들은 신체를 강탈하는 미지의 존재에 맞서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도망다니거나 숨지만 상대가 불에 약하다는 걸 알고 화염병을 만들어 대적하기도 한다.

N서울타워에서 시작된 고립-생존 구조가 계속 이어진다. 서울역, 한강 같은 익숙한 공간이 활용되고 카카오톡을 통한 소통, 유튜브 생방송 같은 일상적인 활동이 등장하며 현실을 환기한다. 낯선 존재가 나타나 신체를 강탈하는 설정은 허구이지만, ‘지금, 여기’를 보여주는 공간과 일상적 활동이 만든 현실감은 고립-생존의 스릴을 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주인공 연우는 고립-생존 과정에서 여러 위기를 극복하는데 속칭 ‘사이다 서사’와 다르게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심지어 연우는 면역자로 일정한 능력을 보유한 캐릭터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위기에 빠진다.

혐오 동원하는 ‘사이다 서사’

네이버 웹툰의 최상위권 인기작들은 압도적 힘을 얻어 사적 응징에 성공하는 강렬한 쾌감에 집중한다. 살인마를 응징하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고, 촉법소년을 응징하기 위해 촉법소년이 동원되며, 고등학교 일진들을 응징하기 위해 폭력단을 불러낸다. 이 과정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건 혐오의 정서다. 마음 놓고 혐오해도 되는 존재들을 제시하고 그들이 했던 방식을 동원해 쓸어버린다. 사이다 서사의 핵심 성분, 비유하자면 ‘탄산’이 혐오다. 혐오가 동원된 쾌감은 혐오를 증식시킬 뿐 본질적인 고민을 감추어놓는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N서울타워, 서울역, 한강 등의 익숙한 공간에서 고립-생존 구조가 계속 이어진다.ⓒ네이버 웹툰 갈무리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생존을 위한 다양한 분투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 자주 등장한다. 같은 반 친구끼리도 안전하게 의지할 수 없다. 남산타워에 연우만 남겨놓고 탈출한 장면을 시작으로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이나 따돌림, 거짓말은 물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이들도 등장한다. 이렇듯 생존 서사를 강력하게 끌어가는 다양한 빌런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들을 ‘사이다’로 응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평범한 인물에 눈에 보이는 애정을 쏟는다. 위험에 처한 학생들을 피신시켜주는 돈가스집 할머니, 학생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지켜주려는 노숙인 아저씨, 군인으로 본분을 다하는 3소대 소대장과 같은 이들이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하는 호러나 스릴러에는 독자가 쉽게 혐오할 수 있는 대상이 등장한다. 대부분 적대적 존재다. 사이다 서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혐오 정서는 간편하게 대중의 인기를 끌어낼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 작품 전반에 걸쳐 혐오에 기댄 사이다를 활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댓글은 때때로 혐오를 불러낸다.

웹툰의 경우 독자의 여러 활동이 고스란히 데이터가 되어 기록된다. 독자가 생산하는 데이터는 하나의 방향성이 된다. 댓글, 좋아요, 퍼가기와 같은 행동은 물론이고 내가 접속한 시간과 장소 역시 데이터다. 웹툰의 상호작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는 댓글이다. 웹툰, 적어도 네이버 웹툰의 최종 완성은 댓글이다. 댓글을 통해 독자는 웹툰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등장한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 73화 베스트 댓글을 보면, 소대장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댓글(“아 결국 소대장 죽음”)과 함께 여주인공을 빌런으로 규정하는 댓글(“소연이가 빌런 같지”)이 있다. 캐릭터에 대한 독자의 평가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다 플롯에 개입하는 댓글(“부모 마음은 이해하는데 제발 가만히 있으세요”)이 등장하기도 하고, 웹툰과 상호작용하는 맥락을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도 나온다. “능력도 없으면서 착하기만 한 것만큼 민폐도 없다.” 작가가 감추려고 했던 대상을 향한 혐오 정서가 댓글에선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을 읽는 ‘지금, 여기’ 독자들에게는 ‘능력도 없이 착한 것’은 민폐다. 작가는 주인공 연우와 함께 작품에 등장하는 평범한 이들의 헌신과 노력에 주목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혐오의 대상을 찾아 그들을 처단의 장으로 불러낸다. 세포의 신체 강탈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고립-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2023년 지금, 여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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