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자"며 들어갔던 석탄 구뎅이가 고요의 숲으로
아낌없이 내어주고 은퇴한 산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의 망경대산望景臺山(1,088m)은 30여 년간 석탄을 내어주며, 산업화의 원동력과 각 가정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 잊혀진 충신 같은 산이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옥동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은퇴 길로 접어든 망경대산은 광부들이 떠나고, 간혹 등산객과 걷기길 여행자만 찾는 제2의 길로 들어섰다.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주역은 '운탄고도 3길'이다. 광부들이 살던 마을인 해발 520m의 모운동을 출발해 석탄을 나르던 임도를 거쳐 망경대산 주능선을 넘어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와 예미역을 잇는 17km 코스다.
핵심 구간인 모운동에서 석항삼거리까지 13km 코스는 강원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강원 샷건 트레킹(강원 18개 시군 트레킹 챌린지) 프로그램의 영월 인증 구간이기도 하다. 영월을 대표하는 걷기길인 것.
강원도의 18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샷건 트레킹에서 4개의 코스가 난이도 '상上'에 해당하는데 그중 하나가 운탄고도 3길이다. 1,000m대 산 주능선을 넘는 구불구불한 코스라 둘레길 정도로 쉽게 생각하고 도전하면 어려울 수 있고, 산행이라 여기면 어려움 없이 완주할 수 있다.
운탄고도는 영월~정선~태백~삼척을 잇는 9개 구간 총 173km의 걷기길로 폐광 지역을 집대성한 걷기길이다.
김삿갓면 88번 지방도로에서 옥동천을 건너는 다리인 주문교를 지나 4km의 구불구불한 찻길을 오르면 모운동이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곳으로, tvN 예능프로그램 '운탄고도 마을호텔' 촬영지다.
해발 520m의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유래하는 모운동募雲洞은 아기자기한 벽화와 소품들이 인상적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오르막길로 오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임도로 들면 운탄고도 3길이다. 시멘트길은 금세 흙길이 되고, 흙길은 어느새 숲길이 된다.
시작부터 광산의 흔적이다. 유적처럼 흔적만 남은 동발제작소와 광부의 샘이다.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을 말한다. 광부의 샘은 동전을 던지며 안전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했던 곳이다. 초반 볼거리가 풍성하다. 얼마 안 가 황금폭포전망대가 나온다.
마을 주민들이 폐광된 옥동광업소에서 흘러나오는 용출수를 끌어다 만든 폭포다. 탄광에서 나온 물이라 철분이 많아 절벽이 황금색을 띤다고 하여 황금폭포다. 아찔한 고도감과 황금색 절벽을 흐르는 폭포수가 감탄을 끌어낸다.
광부 동상을 지나치면 폐광된 옥동광업소가 지척이다. 탄광 입구 앞에는 1987년에 만든 목욕탕이 있다. 지금은 박쥐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임도는 꾸준히 고도를 높이며, 힘든 만큼 드넓은 시야를 보여 준다. 모운동 너머로 백두대간 소백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마대산 능선이 힘자랑을 하는 것이 드러난다.
광부의 이야기는 임도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짙은 숲의 고요와 뙤약볕의 강력함을 끝없이 누리며, 뻐근할 정도로 길게 임도를 걷게 된다. 옛 옥동납석광업소도 볼 수 있는데, 조각재나 타일, 유약에 사용되는 납석(곱돌)을 채굴하던 곳이다. 흙을 조금만 걷어내도 탄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노천탄광이었다.
임도는 갈수록 갈림길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정표와 표지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싸리재를 지나면, 수목원마냥 아기자기한 꽃이 만발한 깔끔한 정원의 사찰을 만나게 된다. 만봉불화박물관이 있는 만봉사다. 이후 임도는 S자로 굽이치며 길은 망경대산 정상 턱 밑까지 솟구친다.
망경대산 정상을 스치듯 지나가면 길은 북쪽으로 뻗는다. 여기서 동쪽 영광산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드룹산 방면 임도를 따르게 된다. 고랭지배추밭이 펼쳐지는 수라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솔길로 접어든다. 석항삼거리로 내려서는 5km 숲길이다.
드룹산으로 가는 능선을 따르다 정상에 오르기 전, 북동쪽 골짜기로 뻗은 임도로 내려서면 된다.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이 길게 이어지므로 스틱을 적절히 잘 사용하는 것이 좋다. 걷기길보다는 산행이란 말이 어울리는 길이다. 능선을 내려서면 석항리 찻길로 연결된다. 강원 샷건 트레킹은 석항삼거리까지다. 운탄고도 3길은 여기서 마을길을 따라 4km를 더 간다. 신동읍집하장과 예미농공단지를 거쳐 예미역에서 끝난다.
40여 년 전 모운동에서 아침에 출발한 광부는 망경대산 옥동광업소에서 석탄을 캤다. 그들이 캔 석탄을 제무시GMC 트럭에 싣고 임도를 따라 석항삼거리 석항역(현재 폐역)까지 옮겼을 것이다. 검은 땀 흘리던 광부들의 역사를 따라 걷는, 이제는 온통 연둣빛인 망경대산 운탄고도 3길이다.
교통
영월버스터미널에서 모운동(주문리)마을로 가는 버스가 1일 4회(06:15, 10:00, 14:00, 18:25) 운행한다. 석항삼거리에서 모운동에 세워 둔 차량을 회수하러 갈 경우 신동읍콜택시(033-378-0006)를 이용한다. 요금은 4만~5만 원 정도.
예미역에선 중앙선, 영동선, 태백선 무궁화호가 수시 운행한다. 예미역에서 청량리역행 열차가 하루 5회(07:54, 09:25, 14:08, 17:24, 2016) 운행한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만2,500원.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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