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땡볕 냄새

조성순 수필가 입력 2023. 6. 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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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보이는 튤립나무 가로수에 다소곳하게 꽃이 피었다.

가로수 밑에서 숨은 듯 피어있는 꽃송이를 찾아본다.

마늘종이 뿜어내는 열기에서 땡볕 냄새가 났다.

튤립나무 꽃처럼 가물가물하다고 없었던 건 아닌데 멀어진 만큼 그리움이 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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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수필가

드물게 보이는 튤립나무 가로수에 다소곳하게 꽃이 피었다. 가로수 밑에서 숨은 듯 피어있는 꽃송이를 찾아본다. 커다란 잎사귀 사이에 연둣빛 꽃송이, 없는 듯 있다.

동네 마트 지나다 쌓여있는 마늘종을 보았다. 마늘종이 뿜어내는 열기에서 땡볕 냄새가 났다. 느닷없는 냄새에 어린 날 기억들이 조각보처럼 펼쳐진다.

한여름을 산골학교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흙먼지 속 미루나무 길, 매미 소리 쩌렁쩌렁하고, 바짝 마른 쇠똥 주위에 윙윙거리는 파리 떼, 땀과 땟물에 절어있던 우리들, 땡볕 아래 어깨가 벗겨지도록 강물에서 풍덩거리던 머슴애도 계집애도 아닌 그냥 아이들이었지. 뙤약볕도 소나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도 물도 거침이 없었다. 그 거친 들판이, 강물이 우리의 친구였다.

아직 오월인데 볕이 따갑다. 지금은 집안 형광등에서도 자외선이 나오니 썬 크림 바르기를 권하는 시대다. 외출 할 때 양산에 장갑,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워도, 추워도 냉 난방기로 적정(?)온도를 유지한다. 자연이 주는 불편함을 해결 해주는 기계덕분에 내 한 몸 쾌적하기는 하지만….

마늘종 한 다발을 사다가 염장을 했다. 꼬지지한 추억도 같이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매번 장아찌를 사 먹기만 하다 냄새에 이끌려 처음시도 한 거사(?)가 성공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마늘종이 짭조름한 장아찌가 되어 먹을 때마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 오랜만에 자연친화적인 작업을 했더니 뿌듯하다.

언젠가, 땡볕 속에서 뛰놀던 한 아이를 꿈속에서 만날 쯤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신기하게 똑 같은 꿈을 다시 꾸었는데 그 아이를 기다릴 시점에서 여기서 깨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꿈속에서 그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다. 짧고 강렬했던 그해 여름도 어렴풋하고 함께했던 친구도, 작렬하던 태양도 시들었다. 그 날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올 수만 있다면 마술처럼 '땡볕 냄새'가 펼쳐질까.

조각보 같은 풍경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헛꿈이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 튤립나무 꽃처럼 가물가물하다고 없었던 건 아닌데 멀어진 만큼 그리움이 깊은가 보다. 순수했던 시절이 간절해지면 푸른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단풍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아파트 담장을 오르는 장미 덩굴과 어깨를 겯고 걸어본다. 지금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운 바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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