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언해피 서킷(Unhappy Circuit)을 기다리며

원은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연구원 2023. 6. 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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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연구원

1968년 제작된 스탠릭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인공지능형 컴퓨터 HAL9000은 '나는 두렵습니다(I am afraid, Dave)'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가까스로 종료된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그것은 기계인지 인간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오늘 날 우리가 구현해낸 미래 인공지능의 향방에 큰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미국의 사이언스 픽션 시리즈 '스타트렉 :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등장하는 데이터 소령(Lt.Commander Data)은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다. 극중에서 그는 명석한 판단과 책임감 있는 모습과 달리 인간의 감정만큼은 느끼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인간의 유머가 어떻게 웃음을 유발하는지, 또 기쁠 때 울거나, 웃고 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상황을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으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얼핏 인간이 되기 전 피노키오처럼 모든 것을 인간과 공유하지만 어느 것도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HAL9000과 데이터 소령 외에도 인공지능 기반 안드로이드의 모습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돼 왔고, 현실은 이제 그것을 실현하는데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최근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 GPT)가 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뜨겁다. 챗GPT는 빅데이터를 활용·수집하고 가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질문에 정확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제안하는 것으로 챗GPT 제너레이션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기술이 개발 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 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를 사용할 것인지 그 방향성과 이유를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효용과 생산성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많은 생각과 깊은 심연이 우리가 신체의 기능을 종료하는 그날까지 도저히 극복하고 벗어낼 수 없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복잡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생활, 관계와 존재, 치솟을 것 같은 기쁨과 가끔씩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악함까지 포함해 어디까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인공지능으로 구현해 낼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기술적 측면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과 무자비한 투자만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인간의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오랜 시간 전해 내려왔고 앞으로도 전해야 할 무궁무진한 역사와 다 새길 수 없는 보통의 이야기들을 함께 담아내어야 한다. 다학제 분야 전문가 집단이 함께 이를 논의해야 하고, 종국에는 인간 개개인이 한데 모여 인공지능 개발 방향과 목적을 치열하게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은, 자화상을 그리듯 우리 스스로를 반추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반추하는 것은 어쩌면 다 알고 있으나 전혀 알지 못했던 미지에 대한 탐구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우리의 선제적인 논의와 끊임없는 질문만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어떤 존재이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정답 없는 그 물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답 같은 정답을, 정답 같은 해답을, 해답 같은 묘안이라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끝에 우리는, 언해피 서킷(Unhappy circuit)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희로애락을, 인간의 흥망성쇠를, 유한함으로서 빛나는 무한의 가능성을 함께 상호작용하고 공유할 것이다. 인류의 삶이 조금이나마 더 바르고 옳게 변화하도록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가 세대를 걸쳐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여야만 한다. 그렇게 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함께할 언해피 서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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