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소리 "호락호락하지 않던 바이올린으로 이제는 세상과 소통"
"음반 들으면 삶 엿볼 수 있어… 음악 안에서는 위장 불가능"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5살 때 부모님을 졸라 바이올린을 선물 받았어요. 하지만 호락호락 쉽게 소리를 내주는 악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보니 바이올린은 저 자신도 모르는 저의 내면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해준 존재예요."
김봄소리(34)는 요즘 클래식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로 꼽을 수 있는 연주자다. 조성진과 소프라노 박혜상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을 맺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그는 밀려 들어오는 공연 요청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요 활동 무대인 유럽을 넘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하며 5만명의 관중을 매료했다.
올해도 세계 최대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BBC 프롬스, 파리오케스트라 데뷔 등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이달 19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네덜란드의 명문 악단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협연한다.
김봄소리는 2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한때 열정을 쏟았던 바둑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친절하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5살 때 정경화의 공연을 보고 바이올린에 완전히 매료됐다는 김봄소리는 처음에는 삑삑대는 바이올린 소리에 당황했다고 했다.
그는 "음악이 가진 강렬한 힘에 홀리듯 빠져들었다"며 "하지만 처음 소리를 내던 순간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닌 기괴한 소리가 났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훌쩍 성장해 세계 무대를 누비는 음악가가 된 김봄소리에게 바이올린은 이제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존재가 됐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삶에서 소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과 영감이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큰 위로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강해져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음악을 함으로써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치와 역할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바이올린을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자신만의 연주로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는 연주자지만, 10년 전에는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휩쓸며 '콩쿠르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봄소리는 "세계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별명"이라며 "그때의 간절하지만, 무지했던 열정도 생각이 나고 초심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 연주자들에게 "콩쿠르에는 많은 장단점이 있지만 단시간 내에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훈련과 무대 경험을 쌓고 싶다면 콩쿠르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고 권했다.
김봄소리는 한때 바이올린 못지않게 바둑에도 열정적인 시간을 쏟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급수를 높이기 위해 바둑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답변에서는 근성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 때까지 바둑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일본 대학과 교류전에도 참여했지만, 요즘은 도통 시간이 없어 바둑을 두지 못해 기력(碁力)이 다 죽은 것 같다고 푸념했다.
"바둑 한판을 보면 바둑 기사의 기풍(碁風)과 성격, 그리고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하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작곡가의 작품이나 연주자의 음반을 들으면 그 작곡가와 연주자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음악 안에서 절대로 숨기거나 위장할 수 없죠."
김봄소리는 이번 공연에서 2013년 독일 ARD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김봄소리는 콩쿠르 이후에도 무대에서 여러 차례 이 곡을 연주하며 브람스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그는 "ARD 결선은 브람스의 구조적인 음악을 어떤 사운드와 방식으로 연주하는지 좀 더 깊게 알게 된 무대였다. 그때부터 브람스의 음악에 더 빠지게 됐다"며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놀랍도록 비슷한 점이 많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브람스가 가졌던 베토벤 음악에 대한 존경과 감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전과 지금의 연주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동안 새로 배우고 연주했던 브람스의 작품들과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제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적 의미를 정립했다는 것"이라며 "수많은 연주자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배웠던 경험들도 (10년 전과 달라진)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봄소리는 "샤니는 음악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가 아주 깊은,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는 연주를 하는 지휘자"라며 "그와 함께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 곡을 이번 투어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지어줬다는 순우리말 이름처럼 '봄의 소리'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봄의 소리는 고통스러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당당하면서도 힘차고 희망에 가득 찬 소리라고 생각해요. 희망이라는 말에는 순수성도 가득 담겨있죠. 제가 추구하는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봄의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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