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여러 사람의 고민을 판사님께 전달하는 과정[로앤톡]
1950년대 영화이지만, 지금도 대학 영화 교양과목에서 꼭 감상해야 할 영화로 꼽히는 ‘12인의 성난 시민들’. 한 소년이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12명의 배심원들은 오랜 숙의 끝에 소년에게 무죄 판단을 내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토론이 빠르게 전개되면서 영화는 몰입감을 더한다.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배심원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에 도입되었다. 형사사건에서 배심원이 된 국민이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하여 판결을 선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만참여재판은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을 기속하지 않고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무죄의 결정권을 배심원단이 가지고 있는 미국과 차이가 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에서는 장애인을 강간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극에서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이 3:4로 갈렸고, 무죄가 더 많았는데, 재판장은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한다. 우리나라는 배심원의 평결이 권고적 효력밖에 없어,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되지 않고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속력도 없는 국민참여재판을 해서 무엇하나’라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보면, 국민참여재판의 영향력이 만만하지 않다 생각할 것이다. 1심에서 배심원의 만장일치로 한 평결결과를 받아들여 무죄로 판단하였으나, 항소심에서 피해자에 대하여만 증인신문을 추가로 실시한 후, 유죄로 판단한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에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의 위반 및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하면서 파기 환송한 적이 있다. 이러한 판례가 있을 정도이니, 국민참여재판의 결과에 반하는 판단을 하기란 재판장님이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배심원들은 공판절차에 참여하여 증인이나 피고인에게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고,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하여 논의를 한다. 또한 재판부와 함께 피고인에게 부과할 적정한 형에 대해 토의하게 된다.
배심원은 무작위로 선발되고, 국민참여재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배심원이 되기란 매우 낮은 확률일 터. 배심원을 경험하고 싶다면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그림자 배심원”을 신청하면 되는데, 그림자 배심원이 되면 배심원과 동일한 방식으로 재판을 지켜보고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한다. 물론 재판장님께는 그림자 배심원의 의견은 전달되지 않는다. 배심원 체험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판의 절차와 흐름에 대해 법원에서 직접 설명해주기도 하니 공부도 된다.
국민참여재판은 합의부 관할 사건을 대상으로 하며, 미리 피고인의 신청에 따라 결정되며, 보통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기일 전부터 여러 차례 재판준비기일을 열어 국민참여재판을 준비하고, 국민참여재판 당일 재판절차를 모두 진행하고 배심원 평의와 재판장의 판결이 모두 이루어진다. 피고인들 중에 국민참여재판이 무조건 유리한 줄 알고 신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원래는 판사님 세 분만 설득하면 될 문제를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단까지 모두 설득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억울함을 알리고 판단받고 싶다면 좋은 제도이다.
윤예림 변호사(법무법인 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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