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디리스킹’

서정명 기자 2023. 6.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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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국제부장
G2, 공급망 확보·통화전쟁 더욱 치열
韓, 대중 반도체 제재 등에 무역적자 지속
中, 韓에 '경제적 강압' 조치 꺼내들수도
맹목적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 방안 필요
글로벌 기업은 中 사업확대, 실리 챙겨
[서울경제]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칼날이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글로벌 경제 패권을 쥔 이후 이를 지키려는 미국과 1940년대 아편 전쟁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는 중국이 맞부딪치고 있다. 통상 공급망 확보, 달러와 위안화 통화 전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신경전 등 전선은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다. 핵심 이익을 지키려는 주요 2개국(G2)간 전략 경쟁은 수출과 무역 비중이 높고 북한 핵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게는 그야말로 국부와 존망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G2 경제·안보 대결의 양상을 면밀하게 체크하면서 후폭풍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국간 통상 마찰에 따른 피해는 현실화하고 있다. 1일 정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5월 수출은 522억 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2%나 줄었다.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 분야가 미국의 대중 제재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36.2% 급감했다. 수출은 8개월째 쪼그라들고 있고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반도체는 한국 무역수지의 바로미터다.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하고,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공급망에 빗장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수지 개선은 힘에 부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가 올해 1월 1.7%로 내리고 4월에 다시 1.5%로 하향 조정한 것은 중국 영향력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급망 제재에 본때를 보일 요량으로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를 축소했고 방산회사 록히드마틴에도 대항 조치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이 우리 기업을 정조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달러 패권에 맞선 중국의 ‘위안화 굴기’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 무역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위안화 비중은 지난해 2% 미만에서 올해 4.5%를 넘어섰다. 브라질은 중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SWIFT 대신 중국의 ‘국경간 위안화지급시스템(CIPS)’을 이용하기로 했고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원유와 천연가스 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해 초 제로 금리에서 현재 5.25%까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면서 각국의 달러 조달 비용이 올라가자 이 틈을 파고들며 위안화 근육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무역과 통화 파워가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다.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중국과의 관계를 절연하고 미국 공급망에 완전 편입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접근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 중국과는 최대한 ‘현상 유지(Status quo)’ 전략을 유지하는 가운데 돌발 변수나 위험 요소가 나올 때는 사안마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대중 경제정책의 방향성과 로드맵을 섣불리 마련하거나 공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지금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역설한 여우의 지혜를 발휘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해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를 26조 원에 파는 계약을 맺었고 중국의 경제보복에 맞섰던 호주는 6년 만에 양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올해 초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메리 배라 GM CEO가 중국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랙스먼 내러시먼 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 CEO들이 중국을 찾아 사업 확장을 논의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글로벌 국가와 기업들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서정명 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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