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그늘을 보며/황수정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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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휘둘려 마음 헛헛해지면 산책길 나무벤치에 앉는다.
앞장선 강아지 녀석은 나무벤치 앞에서 틀림없이 나를 힐끗 돌아본다.
서툴고 모자란 어린 나무 그늘이 날마다 여물고 있다.
길어지는 저녁해가 어린 나무의 그늘을 오래 지켜 주는 유월의 나무벤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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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휘둘려 마음 헛헛해지면 산책길 나무벤치에 앉는다. 앞장선 강아지 녀석은 나무벤치 앞에서 틀림없이 나를 힐끗 돌아본다. 꾸물대지 말고 앉으라는 눈짓이다. 녀석이 알고 있다. 제 머리를 쓸어 주는 손길이 그 자리에서는 천천히 고요해진다는 것을.
지난가을 옮겨 심은 어린 나무들 앞에 나무벤치가 있다. 그저 앉았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시커멓게 그늘 좋은 큰 나무만 좋은 줄 알았다. 작은 나무들도 할 일을 다하고 있다. 잔가지들은 바람더러 샛길을 내라고 아낌없이 흔들리고 저녁볕 한 줌에도 애써 그늘을 짓는다.
부쩍 짙어진 그늘이 마주 앉은 내 발치에까지. 서툴고 모자란 어린 나무 그늘이 날마다 여물고 있다. 봄비에 다정하게 자랐으니 괄괄한 여름 장대비를 잘 견디겠다면서.
옛 시인 소동파는 일없이 고요히 앉았으면 하루가 이틀이 된다 했지. 그늘 바깥에 가만히 앉아 그늘을 배운다. 길어지는 저녁해가 어린 나무의 그늘을 오래 지켜 주는 유월의 나무벤치에서.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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