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도법자연(道法自然)

관리자 2023. 6.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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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고랑 일군 텃밭에 멀칭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심고, 콩을 심고, 산짐승 방지용 울타리를 쳤다.

그날 저녁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농부의 몸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이틀이 지난 후부터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 자연의 원리가 온전하게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땅이다.

농부는 특별한 스승이 없어도 땅을 밟으며 하늘을 배우고, 도를 익히고, 자연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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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아낌없이 베푸는 어머니
낮은 곳에서 겸손을 가르치며
모든것 주어도 자랑하지 않고
봄이면 따듯함으로 세상 품어
저절로 그러한…그래서 자연
농부, 농사로 그 이치 깨우쳐

열고랑 일군 텃밭에 멀칭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심고, 콩을 심고, 산짐승 방지용 울타리를 쳤다. 그날 저녁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농부의 몸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이틀이 지난 후부터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고통을 먼저 느껴야 했다. 아픔은 바로 오지 않고 시간을 두고 온다는 것을 땅에서 배웠다.

기억해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중(喪中)에는 슬픔도 오열도 없었다. 그러나 살면서 시간을 두고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슬픔이 아픔이 되기까지는 익는 시간이 필요하다. 땅은 아픔도 치유도 시간차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땅은 말한다. 네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너의 씨앗을 품지 않겠다고. 농사일은 몸을 구부리는 일이다. 한없이 겸손해야만 땅은 농부의 씨앗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희망을 틔우고, 자라게 하고,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비로소 자신의 속살을 한움큼 베어 농부에게 내어준다.

땅은 겸손한 자에게 자신의 품을 연다. 땅은 모든 것을 주었으나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한다. 땅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거나 다투지 않는 부쟁(不爭)의 덕을 가르쳐준다.

땅의 주변에는 버려진 존재가 없다. 잡초도 작물도 벌레도 모두 자기 방식대로 존재한다.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는 것은 농부의 선택일 뿐이다.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는 차별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땅이다. 사랑과 증오란 이름으로 축복을 내리거나 저주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차별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이 땅이다.

땅은 열릴 때와 닫힐 때를 안다. 겨울에는 문을 닫아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봄이 되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세상을 품어준다. 생명은 오로지 땅에 기대어 한 호흡으로 존재한다. 땅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아낌없이 자신의 살을 내주기에 밥 퍼주는 엄마, 식모(食母)라 부를 만하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안긴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땅은, 우리의 어머니를 닮았다.

노자는 자연(自然)을 알려면 땅(地)을 먼저 배우라고 말한다. 땅에는 하늘의 이치가 담겨 있고, 그 하늘에는 도(道)와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인법지),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지법천),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천법도),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도법자연).’

‘저절로(自) 그러한(然) 것’이 자연이다.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듣는다. 세상에 어떤 일도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없다. 강요와 억지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아서 결코 오랫동안 이어질 수 없다. 우주 어느 하나 자연의 원리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없을진대 인간 역시 이런 자연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그 자연의 원리가 온전하게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땅이다.

건강수명이 기대수명에 비해 10년 이상 짧다고 한다. 그 기간만큼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거나 건강 문제로 고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건강하고 행복한 말년을 위해 많은 전문가는 땅에 다가가라고 조언한다. 땅의 품에 안기면 좀더 건강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땅과 만나는 일은 비록 고된 일이지만, 땅은 확실히 생명 창조의 만족과 고통 뒤에 오는 기쁨을 선사한다. 농부는 특별한 스승이 없어도 땅을 밟으며 하늘을 배우고, 도를 익히고, 자연을 이해한다. 땅은 가르치지 않고도 깨우치게 하는 위대한 스승이다.

QR코드를 찍으면 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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