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가벼움의 예술

관리자 2023. 6.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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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제비들이 날아들었다.

기후변화가 심해 과연 제비가 오려나 걱정했지만 아침저녁으로 다소 쌀쌀한 날씨인데도 제비들이 나타나 마당 위를 빠르게 선회했다.

훤하게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제비들의 몸짓은 아주 활기 차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제비들이 머물다 간 둥지 밑을 보니 밤새 내깔긴 하얀 제비 똥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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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제비들이 날아들었다. 기후변화가 심해 과연 제비가 오려나 걱정했지만 아침저녁으로 다소 쌀쌀한 날씨인데도 제비들이 나타나 마당 위를 빠르게 선회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물찬 제비 같다’는 말이 있듯이 제비는 참새나 딱새·까치·까마귀와 달리 날렵한 비상과 활강의 날갯짓으로 명랑의 아우라를 선사한다.

제비들이 날아온 며칠 뒤 제비 한쌍이 우리집 대문간 처마 밑을 자주 드나들곤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지난해에 튼 둥지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새로 둥지를 틀지 않고 옛 둥지를 수리해 사용할 모양. 한낮에는 그 둥지에 젖은 흙을 물어다 덧붙이고, 밤이면 둥지 곁의 서까래에 박힌 못에 한쌍이 나란히 앉아 잠을 청하곤 한다.

훤하게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제비들의 몸짓은 아주 활기 차다. 빨랫줄에 앉아 온몸을 까딱대며 지저귀다가도 재빠르게 솟구쳐 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가벼움의 예술. 새들은 뼛속이 비어 몸이 가볍다는 말이 있는데, 뼛속이 비었다는 건 제 몸을 유지할 만큼의 먹이만 먹지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렷다.

제비들을 보면서 생긴 요즘 내 마음속 화두는 ‘가볍게 사는 법’. 평소 우리는 오만가지 무게에 짓눌려 산다. 후회와 미련이라는 과거, 잃어버린 행복,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 등. 무엇보다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건 자아다.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는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현재의 내 모습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에 자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작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자아라는 허상에 붙잡힌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사는 집으로 귀촌한 후 나는 봄부터 여름까지 늘 제비들을 보며 살았다. 그렇게 제비들과 한철을 살다가 홀연히 떠나보낸 후 허전한 느낌을 담아 시를 썼다.

“빈 둥지 아래 땅바닥엔/백금 같은 제비 똥만 수북했네/그렇게 애지중지한 녀석들인데/똥만 잔뜩 갈겨놓고/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다니/넋 나간 사람처럼/쪽마루에 앉아 있다가/만남이나/이별에도 무심한/저 야생에 닿지 못한/속물근성을 부끄러워하다가/딱딱하게 말라붙은 이별/불투명의 사랑 긁어내지 않고/며칠 두고 보기로 했네/지금쯤 어느 먼 하늘을 날고 있을까/20그램의 무심(無心)은…”(시 ‘20그램의 無心’ 전문)

몸무게 겨우 20그램의 무심. 내가 제비에게 굳이 무심이란 말을 붙인 것은 사람의 자아라는 무거움에 빗댄 것. 우리 인간이 자아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면 ‘만남이나 이별에도 무심한’ 야생 혹은 야생의 지혜를 회복해야 하리. 그 회복의 시작은 무엇일까.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제비들이 머물다 간 둥지 밑을 보니 밤새 내깔긴 하얀 제비 똥이 널려 있었다. 나는 삽을 가져다 똥을 긁어 텃밭에 내다버렸다. 손님이 온다고 하지 않았으면 그냥 며칠 내버려뒀을 것이다. 제비 똥은 고약한 냄새도 풍기지 않고 사실 깨끗하다. 남의 눈치를 보는 가공된 내 자아가 위생과 비위생을 판단할 뿐.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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