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 끝 숨겨진 '금강산'…지네로 들썩이던 섬마을, 사슴으로 쑥대밭
전남 최북단 43km 떨어진 영해 기점 위치
빼어난 절경…서해 바다 위 금강산으로 불려
5월이면 지네 잡이로 들썩이는 섬마을
주민보다 많은 '무법자' 사슴 급증에 몸살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전남의 최북단, 영광군 홍농읍 계마항에서 서쪽으로 43.2㎞를 내달리면 중국 영해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섬을 마주한다. 해안선 길이 36㎞에 60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안마도(安馬島)다. 안마도 부속섬인 횡도는 우리 영해 기점이다.
안마도는 외지인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있는 배편도 궂은 날씨 때문에 끊기기 일쑤다. 전국의 명산은 모조리 올랐다고 자부하는 등산객도, 황금어장을 꿰차고 있는 내로라하는 낚시꾼도 마음먹은 대로 섬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
바다 위 금강산…사람 손 타지 않은 절경
계마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쯤 달리면 말안장을 닮은 모습의 안마도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곳 주민들은 안마도라는 정식 명칭 대신 바다 위에 떠 있는 금강산이라는 의미에서 서해의 해금강(海金剛)이라고 부른다. 안마도는 본섬을 중심으로 죽도와 횡도, 오도, 석만도, 소석만도와 군도를 이루고 있다. 마치 바다 위에 산봉우리가 떠 있는 형상이다. 섬에 발을 내디디면 구불구불 해안길을 따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기암괴석과 해안절벽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봉우리 사이로 해가 비치면 용이 마치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 보인다는 용바위를 비롯해 간조 때만 문이 열리는 용궁굴, 아기를 낳게 해준다는 옥동자굴 등이 유명하다.
안마도는 1960년대 중반까지 1,50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했다. 특히 1970년대까지 인근 칠산바다에서 조기 파시가 열려, 조업에 나선 뱃사람들을 상대로 한 행상으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모습을 감추면서 안마도 역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파시가 사라지자 섬 주민들은 2000년대 초반 전복 양식에 도전했다. 그러나 수온과 생태계가 적합하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전복에 이어 김 양식에도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소를 방목해 키우면서 한때 유명세를 탔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섬을 살리려는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마도에 한창때의 10분의 1 정도만 남았다. 곰몰과 신기, 월촌, 등촌 마을 중 월촌마을만 남았다.
주민들이 사라지면서 섬의 역사도 잊히고 있다.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의 묘비가 방치돼 있는데 변(卞)씨라는 성만 남아 있을 뿐 누구의 묘인지 전해지지 않는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마을에 재앙과 질병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헛배를 띄워 보내는 헛배제를 올리는 풍습도 있었으나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삼중(77)씨는 “음력 12월 말이 되면 곰몰마을에서 당할머니와 당할어버지를 모시는 당산제를 하곤 했다”며 “음력 초닷새에 신기마을, 음력 초열흘 월촌마을에서 징과 풍악을 울리는 등 각 마을의 장기자랑을 성대하게 치렀지만, 1960년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폐습으로 지정받은 뒤 명맥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전복 양식 실패했지만 지네가 새 소득원
쇠락하고 잊히는 섬 주민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지네다. 42개의 다리가 달린 지네는 일반인들에게 혐오 곤충으로 통하지만, 안마도 주민들에게는 없어선 안 될 주 수입원이다. 매년 5월이면 산란을 위해 땅 위로 올라오는 지네를 잡기 위해 안마도 주민들은 갈퀴와 망태기를 들고 섬 주변 바위 밑을 샅샅이 뒤진다. 습한 바위나 돌, 낙엽 밑에선 어김없이 지네를 찾을 수 있다.
안마도 지네가 통증 치료에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섬 주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말린 지네는 마리당 3,000~4,000원을 호가하고, 생지네 50여 마리가 들어간 '50도 지네주'는 한 병에 10만 원 이상을 받는다.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지네 잡이를 배웠다는 섬 주민 박기선(77)씨는 25일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1,000여 마리를 넘게 잡기도 한다”며 “갈아서 찌개에 넣어 먹거나 백숙과 함께 요리하면 이만한 보양식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관심 속 방치된 사슴 골칫거리
하지만 최근 잡히는 지네 개체 수는 한창때의 3분의 1 수준이다. 주민들은 600마리의 사슴이 섬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마도 주민 한호필(44)씨는 “사슴이 겨울철이 되면 나무껍질을 모두 뜯어먹고, 봄철엔 새순을 전부 뜯어먹고 있다"며 "섬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안마도에 사슴이 들어온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주민들이 꽃사슴 5마리와 엘크 10마리를 구입해 방목했다. 이후 사슴의 상품가치가 떨어지자, 이를 그대로 둔 채 섬을 떠났다. 남은 사슴들이 자연번식해 20년간 개체 수는 40배로 늘었다. 사슴들은 벼와 마늘, 고추 등 농작물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안마도 주민들은 모든 밭에 그물이나 철조망을 쳐놓고 농사를 짓는다. 그럼에도 사슴들은 3m 높이 그물망도 훌쩍 뛰어넘고, 뿔 갈이 때는 조상 묘소까지 파헤친다. 인근 섬까지 헤엄을 쳐 이동해 죽도와 안마도뿐 아니라 주변 부속섬들 대부분을 점령했다.
축산법상 사슴은 ‘가축’으로 분류돼 포획이 불가능하다. 이에 주민들은 주인 없이 방치된 사슴들을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도 자체적인 노력을 수차례 했다. 사슴농장에 넘기려고 했지만, 농장주들은 "상품성이 없다"고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보다 못한 마을 청년회가 ‘총기’ 대신 ‘마취총’을 사용해 사슴을 포획하고 있다. 기절시키는 자체가 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7마리의 사슴을 포획해 경남 진주의 사슴농장에 무료로 넘겼다. 하지만 사슴으로 쑥대밭이 되고 있는 섬에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박경옥(64)씨는 “한 달 만에 사슴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마을 사람보다 사슴 개체 수가 많아 누가 섬 주인인지 모르겠다. 환경부에서 빨리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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