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74) 서울 국립현충원

기자 2023. 6.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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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친일의 해괴한 공존…역사 바로 세우기는 요원한 걸까
국립묘지 1971년(좌) 서울 현충원 2023년(우)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멕시코에 ‘망자(죽은 자)의 날’이 있다. 후손들이 조상들 제사를 지내면 망자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건너온다는 날이다. 그런데 이승으로 넘어올 수 없는 망자가 있다. 후손들이 기억하지 않는 망자는 저승에서도 머무를 수 없는 ‘마지막 죽음’을 맞게 된다. 영혼마저 소멸되는 것이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코코>에 등장하는 망자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노트를 친구에게 뺏기고 살해당한 후 ‘마지막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후손들이 이 망자를 ‘가족을 등한시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편, 친구의 노래를 훔친 살인자는 유명가수가 되어 잘 먹고 잘살다가 죽어서도 후손들이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국립현충원’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다면 <코코>를 베꼈다는 표절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 ‘현충원’에는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함께 묻혀 있다. 영화 출연 예정자는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였던 대통령 박정희와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간도특설대 출신 등 국가공인 친일파 12명이다. 이들은 해방 후엔 친미와 반공을 부르짖으며 부귀영화를 대대손손 누렸고 죽어선 현충원 비석에 자신의 직위와 이름이 새겨졌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영화 속 대사는 “나는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인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 5월, 현충원을 방문한 일본 총리 기시다가 한 말이 아니다. 현직 한국 대통령 윤석열의 공식 발언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들을 안장했던,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현재는 국립현충원으로 불린다. 6월 호국보훈의달에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을 보면 반세기 세월이 흘렀지만 순국선열들이 안장된 무덤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영화 <코코>는 친구를 살해한 범죄가 뒤늦게 밝혀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친일파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던 독립운동가들이 현충원의 무덤들을 보고 유언을 한다면 “나를 현충원에 묻지 말라”일 거다. 후손들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의 과거를 잊고 일제에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현충원 영화는 결론이 뻔한 새드무비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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