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46] 고립된 성에 지는 해
세상을 뜨기 전 유비(劉備)가 자신의 아들을 제갈량(諸葛亮)에게 맡기는 일화가 있다. 임종을 앞둔 유비가 측근 제갈량에게 “내 아이가 괜찮다 싶으면 황제 자리를 잇게 하고, 못났다 여겨지면 그대가 자리에 오르라”는 내용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황제 자리에 오르라’는 제안을 당연히 물리치고 그의 아들 유선(劉禪)을 받들어 촉(蜀)의 새 황제에 오르도록 한다. ‘남겨진 자식들을 부탁하다’는 뜻의 탁고(託孤) 사례는 퍽 흔하나 유비의 이 스토리가 가장 유명하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그 남은 아이들을 고아(孤兒)라고 부른다. ‘고(孤)’의 초기 꼴은 어린아이의 모양, 줄기에서 떨어진 오이 모습의 두 글자가 서로 합쳐진 그림이다. 그로써 일찍이 ‘고아’의 뜻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이 아니다. 홀로 내쳐진 경우를 일컫는 데도 많이 등장한다. 외로이 홀로 있는 모습이면 고립(孤立)이나 고단(孤單), 외로움에 겹친 고생은 고고(孤苦)나 고궁(孤窮), 홀로 두드러짐은 고고(孤高) 등으로 적는다. 쓰임새가 많은 단어 고독(孤獨)은 본래 부모를 여읜 고아와 아이가 없는 노인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었다.
싸움을 연구했던 중국의 병가(兵家)도 이 글자 ‘고’에 주목한다. 일정한 세력을 형성할 수 없어 아주 위험한 경우를 부르기 때문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은 홀로 떨어져 지원군을 받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포위된 성에서 저녁 맞을 때의 상황인 고성낙일(孤城落日)도 그 분위기다. 병가는 아예 그런 군대를 고군(孤軍)이라고 적어 극도로 경계한다.
당나라 때 황제 의전을 재연하며 아주 화려하게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대접했지만 서방국가들로부터 중국의 고립은 외려 깊어진다. 아직 제대로 숙성하지 않은 국력을 과신해 미망에 빠진 탓일까. 중국의 요즘 처지가 그야말로 황혼 무렵의 외딴 성(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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