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어루만지는 흙의 사랑…텃밭서 행복도 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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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고 심고, 싹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목마를까 봐 물주고, 마침내 따고 캐고, 사람들과 나누기.
농기구, 장화, 물뿌리개, 멀리 보이는 아파트, 텃밭에 세 들어 사는 곤충, 달팽이와 무당벌레 애벌레가 신나게 파먹은 적갓잎, 이웃의 농사를 보며 급히 언니들에게 연락해 배추 수확 번개 하기. 저자는 풋고추와 오이와 방울토마토 몇 개를 그린 그림에 '오늘은 이만큼'이라는 글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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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고 심고, 싹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목마를까 봐 물주고, 마침내 따고 캐고, 사람들과 나누기. 주말 농사를 짓는 지인들이 SNS에 이런 사연을 올리면 부럽다. 수확한 토마토가 예쁜 모양이 아니라도, 풋고추가 굽어 있어도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기만 한다. 수확물을 자랑하는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말한다. 땀 흘리는 기쁨을 알았다고. 자신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흙을 만지면서 얻은 것이 많았노라고.
그 마음을 유현미 작가는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에서 이렇게 썼다. “이 조그만 밭이, 흙이, 나를 조건 없이 통째로 받아주는구나. 씨를 넣고 모종을 심느라 흙을 계속 매만지는 동안 정작 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흙과 나 사이 오래된 신뢰의 감정이 모깃불 연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났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 이상한 감흥에 젖은 채 모종과 씨앗을 마저 다 심었다.”
이 책은 유현미의 한해 텃밭 농사를 담았다. 씨를 뿌리는 3월에서 마지막 수확을 하는 12월까지 담은 도시텃밭 그림일지이다. 텃밭 시 그림책 ‘아그작 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 둥 생태 감수성이 깊이 묻어나는 그림책을 지어온 유현미의 글·그림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무엇을 심을지 그려놓은 텃밭 그림지도에서 상추며 쑥갓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농기구, 장화, 물뿌리개, 멀리 보이는 아파트, 텃밭에 세 들어 사는 곤충, 달팽이와 무당벌레 애벌레가 신나게 파먹은 적갓잎, 이웃의 농사를 보며 급히 언니들에게 연락해 배추 수확 번개 하기…. 저자는 풋고추와 오이와 방울토마토 몇 개를 그린 그림에 ‘오늘은 이만큼’이라는 글을 붙여주었다. 딱 ‘이만큼’ 딴 모양이다. 맛있게도 익었다.
글은 다정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건드리고, 그림은 가끔 군침을 돌게 한다. 텃밭을 오가는 저자의 부지런한 발길과 야무진 손길이 보인다.
저자는 “작고 소박한 텃밭 농사라도 농사는 정확히 기후변화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썼다. 책에는 2022년의 텃밭 농사가 기록돼 있다. 2022년 봄은 이상고온과 냉해, 긴 가뭄으로 작물이 전에 없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5월 25일 기록의 제목은 ‘타는 목마름’이다. 일부를 읽어보자. “이렇게 처음 겪는 일이 앞으로 계속 늘어나겠지. 가뭄을 구체적으로 겪으니 쌀이나 채소 씻은 물을 그냥 버리는 것도 너무나 아깝다. 내가 이러한데 생업이 농사인 농부들 심정은 어떨까. 텃밭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잘난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보드라운 흙을 어루만지며 텃밭에 서 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면 텃밭 안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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