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면 행복하게, 없으면 자유롭게… 그것이 내 삶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3. 6.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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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사자암 주지 향봉 스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펴내
사자암 마당을 쓸다 미소짓는 향봉 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수심 가득한 얼굴의 부부가 암자를 찾아왔다. 일곱 살 아들이 자다가 헛소리하고, 귀신도 보인다고 한다는 것. 병원·굿도 효험 없었고, 어떤 무당은 스무 살도 못 살 거라고 했단다. 사연을 들은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고 아이의 부모에게 삼배(三拜)를 올렸다. “나라의 일꾼이 될 아이다. 그런 아이를 낳고 길러준 은혜에 대해 올리는 절”이라 했다. 90세까지 살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가족은 환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그 아이는 현재 스물두 살로 의대에 다니고 있다. 스님이 신통력으로 미래를 맞힌 것일까.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운명론에 기울지 말 일이다.”

전북 익산 사자암 주지 향봉(74) 스님이 에세이집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불광출판사)을 펴냈다. 향봉 스님은 불교계 ‘왕년의 스타’다. 젊은 시절 조계종 총무부장 등 요직을 지냈고, 60만부 팔린 수필집 ‘사랑하며 용서하며’ 등을 낸 인기 작가였다. 오현·성우·정휴 스님 등과 함께 ‘승려 시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인도, 네팔, 티베트, 중국에서 15년간 유랑하듯 수행하다 ‘홀연 마음이 환해지는 체험’을 했다. 2000년대 초반 귀국한 그는 사자암에 틀어박혀 상좌(제자)도 없이 혼자 밥·빨래·청소하며 산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은 책에선 곰삭은 삶과 수행의 향기가 느껴진다.

향봉 스님의 에세이집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표지. /불광출판사 제공

20년 전 사자암에 들어오며 입구 바위에 큰 글자로 ‘바른 신앙 바른 불교’라 새긴 그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애쓴다. 그 방법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사자암에선 사주, 손금, 관상은 안 보고 49재, 천도재, 입시 기도도 올리지 않는다. 안정적 ‘수입원’을 포기한 것. 암자 통장 잔액은 항상 100만원 언저리에서 시소를 탄다. 그래도 봉지라면, 봉지 커피는 누구에게나 무료 제공한다.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로운 삶’이다. 천도재에 관해선 가끔 예외가 있는데, 외손녀를 키우는 할머니가 먼저 세상 떠난 딸의 천도재를 올리고 싶어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이때도 ‘배 3개, 사과 3개’만 준비시키고 비용은 신도가 중심이 된 ‘사자암 운영회’가 부담했다. 스님의 ‘생활 염불’은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이다. 마찰은 피하고 행복에 이르는 주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솜씨는 녹슬지 않았고, 유머도 많다. 개구장이 시절의 일화, 출가 후 입대해 ‘참기름 바른 입’으로 군(軍) 법회를 진행한 에피소드엔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가 원한 인도 여행을 함께하다 현지에서 아내와 사별한 후 남편은 티베트 불교 승려로 출가한 영국인 부부의 이야기는 단편영화를 연상시킨다.

향봉 스님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緣起) 법칙과 무아(無我), 중도 사상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적었다. 그는 또 “불교는 전생(前生)이나 내생(來生)이 아닌 오늘의 종교”라며 “영원한 오늘의 주인공으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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