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O 우체통] 침잠의 반세기, 당신의 고향은 어디쯤 흘러갔을까요
‘편지도 기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원도민일보 편집부가 지난해 런칭한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에 이어 올해 독자들에게 띄우는 ‘KADO 우체통’의 문을 엽니다. 딱딱한 기사체에서 벗어나 신문에서 만나는 보드랍고 따스한 편지 한 줄. 기사라는 것은 결국 기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다는 생각으로 편집부 기자들이 다양한 수신인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수신인은 미담 기사 속 작은 영웅일 수도, 사건 기사 속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즐겨보는 드라마의 작은 조연, 아니면 당신이 즐겨찾는 카페의 커피한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신인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그저 위로와 응원만이 있을 뿐.
KADO우체통에서는 미니엽서 두장 ‘시인하는 기자-부인하는 기자’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시인하는 기자’는 등단시인으로 활동하는 박희준 편집기자가 전하는 서정의 시편지입니다. ‘부인하는 기자’는 편집부 유부녀 기자 2명이 세상의 모든 부인(婦人)에게 보내는 공감의 편지입니다. 한달에 한 번, 잠자고 있던 당신의 우편함을 확인하세요.
강원도민일보는 지난 1월부터 ‘소양강댐의 빛과 그림자’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높이 123m, 저수용량 29억t. 춘천 소양강댐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토대가 됐지만 강원도민의 눈물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KADO우체국 첫 번째 수신인은 소양강댐 수몰민입니다. 연재물에 소개된 수몰민들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이 편지를 띄웁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소양강댐 수몰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 구절 입니다. 1980년, 시대를 향해 시인 이성복이 던진 말 입니다. 1973년 댐에 터를 내어준 수몰민들의 이야기기도 할 것입니다.
정부의 말이 법이던 시절. 나가라니 무작정 나왔고 국가사업이니 그러려니 했다던 서글픈 순응, 어디를 가던 타향살이였다던 고단한 50년을 오늘 조용히 떠올려 보려 합니다.
올해 1월 강원도민일보 지면 위 까만 글씨로 새겨진 그 ‘굳은살의 시간’을 처음 만났습니다. 3153세대, 1만8546명. 다붓다붓 처마를 부비던 3000여채의 집이 스러지고 2만명 가까운사람이 주소를 잃었겠지요. 이장댁 마당에 피었던 앉은뱅이 꽃들도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물속으로 흩어졌을까요. 비가 목 놓아 울던 어느 날 찰랑이는 수면 위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 수면 아래 기억을 쓰다듬었을 수몰민입니다.
이따금 구글에서 50년 전 번지수를 검색해 본다는 수몰민 권오신 씨를 생각합니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조차 물에 잠긴 고향. ‘물 밖에 안 나온다’며 웃어 보였다던 당신의 눈동자는 강물빛이었을까요, 눈물빛이었을까요. 한 해에 한두번 고향 부근을 찾아 물도 만져보고 발도 담가본다는 수몰민 현해숙 씨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고향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라던 당신. 손가락 발가락으로 가만가만 느껴본 고향은 강물처럼 차가웠나요, 눈물처럼 뜨거웠나요.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을 수몰민 강석철 씨, 물속 고향 땅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따뜻한 밥한끼 하고 싶다는 수몰민 이병태 씨도 생각합니다.
한겨울 추위도 잊고 토끼몰이하던 설 자란 다리, 입술이 보라색이 되도록 진달래꽃을 따 먹던 덜 여문 입. 어린 수몰민들의 달뜬 숨을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태를 묻었을, 또 어느 누군가는 생이 끝난 몸을 뉘었을 고른 땅을 생각합니다. 춘천 북산면 물로리에서 태어난 수몰민 엄기석 씨가 기억하는 고향은 ‘비단결 같은 곳’이었다지요. 산과 물만 남은 고향을 그리며 만든 수몰민 모임 ‘산수회’는 이제 이름만 남아 고향품은 물 위를 부유하고 있을까요.
물. 수몰민들에게 물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합니다. 물… 물… 하며 낮게 읊조리니 입속에 한숨이 고입니다. 혀끝이 입천장을 도닥입니다. 슬픔 뒤엔 위로가 있어야 한다 말하는듯 합니다.
‘자연의 계절변화도 또한 그러하여 잘 우는 것을 택하여 그것을 빌려 운다.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 당나라 문인 한유는 시 ‘내가 우는 이유’에서 자연도, 사람도 잘 우는 것을 빌려 그로 하여금 울게 한다 했습니다.
반세기 숨죽였던 실향의 그리움, 이제 강원도민일보의 지면을 빌려 우세요. 돌이킬 수는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을겁니다 .
안영옥 okisoul@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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