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 檢 20년 구형한 ‘강남스쿨존 사고’, 7년 선고한 이유는

양은경 기자 2023. 6. 2.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3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하교 앞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어 숨진 초등학생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뉴스1

작년 말 서울 청담동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도로에서 만취 상태에서 9세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지난달 31일 1심 법원이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20년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입니다. 검찰은 다음날 바로 항소했습니다. ‘강남 스쿨존 사고’로 공분을 샀던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징역 7년을 선고한 이유를 판결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배수로 덮개인 줄 알았다” 재판부 판단은

사건이 일어난 작년 12월 2일 오후 4시 57분 무렵, 운전자 A씨는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8%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길을 건너던 피해자를 뒤에서 들이받아 넘어진 상태에서 역과해 숨지게 하는 사고를 냈습니다. 사고 장소는 스쿨존이었지만 인도는 커녕 안전 펜스조차 설치돼 있지 않아 운전자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A씨는 아이를 치고도 바로 정차해 구호조치를 취하는 대신 사고장소 인근의 자기 집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음주운전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어린이보호구역 치사)외에 특가법(도주치사)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흔히 ‘뺑소니’라고 부르는 특가법(도주차량)은 자동차로 사람을 쳐서 다치게 하고도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그런데 A씨는 “배수로 덮개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고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입니다. 이를 두고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배수로인 줄 알았다는 변명이 저희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당장 ‘아빠’ 하고 외치며 들어올 것 같아 아이의 유품을 어느 하나 치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결심공판 법정에서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났던 스쿨존에 현장검증까지 갔던 재판부도 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배수로 덮개의 높이가 도로면과 차이가 크지 않다”며 “수사기관의 현장조사 과정에서도 다른 차량으로 배수로 덮개를 지나 봤지만 높이가 낮아 덜컹거리는 느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작년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스쿨존에서 발생한 음주 사망하고에 대한 현장검증이 24일 진행됐다. 가해자 A씨가 '배수로 경사로로 오인했고 사람을 친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서 배수로 경사로의 높이에 대한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재판부 “사고현장 돌아오기까지 45초..도주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보다 한참 낮은 양형이 나온 것은 뺑소니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뺑소니는 ①사고사실을 인식하고 ②도주한 때 성립하는데 ①은 인정되지만 ②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A씨가 피해자를 친 직후 자기 집 주차장으로 갔다가 사고 사실을 알고 다시 현장으로 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 45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A씨가 도망갈 생각이었다기 보다는 사고로 경황이 없어 차를 주차장에 둔 후 사고현장에 간 것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판단입니다. 이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될 때까지 현장을 떠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근거가 됐습니다.

뺑소니는 A씨에게 적용된 죄명 중 가장 법정형이 무겁습니다. 특가법 5조의 3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뺑소니가 무죄가 되면서 음주 운전에 따른 특가법위반(위험운전치사)가 가장 중한 죄명이 됐습니다. 특가법 5조의 11은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최근 스쿨존에서 발생한 음주 사망사고에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양형기준이 만들어졌지만 작년 말 발생한 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양형기준에서 정한 ‘다수범죄 처리기준’ 에 따라 특가법위반(위험운전치사)의 법정형 하한인 징역 3년이 이 사건의 기준 형량이 됐습니다.

◇검찰 “어린 생명 빼앗긴 유족 상실감 고려해야” 항소

재판부는 “스쿨존 부근에서 상당 기간 거주해 초등학생들이 많이 다닌다는 점을 알면서도 음주상태에서 운전했다”며 “피고인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음에도 구호조치에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소극적인 점 등 등 범행 이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어 “무엇보다 9세에 불과한 어린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닥친 이 사고로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며 “특히 학교를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들이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왔을 때 이를 마주해야 하는 부모의 참담함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고로 인한 유족의 슬픔, 나아가 또래 아이를 둔 다른 부모들의 공분까지도 감안한 흔적이 엿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A씨가 암투병중이고 피해자를 위해 상당 금액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7년을 선고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준 형량이 된 징역 3년에 4년을 더한 것입니다.

검찰은 다음날 바로 항소했습니다. “운전으로 어린이를 다치게 한 경우 더욱 즉각적인 구호조치가 필요함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어린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겨 버린 유족의 상실감이 매우 큰 데도 전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항소심에서 전부 유죄와 중형이 선고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 내부에서는 ‘부모들이 분노하는 사건’의 경우 특별히 그 처리에 신중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건처럼 어린 아이가 사고로 사망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가해자에 대한 그 어떤 중형으로도 달래질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공분도 높습니다. 그렇지만 법원 입장에서는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도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적절한 양형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질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검찰이 항소하면서 ‘뺑소니 무죄’와 함께 ‘징역 7년’ 양형의 적정성 또한 다시 한번 심판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