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깨어나라 臥佛이여, 화순 운주사의 추억

유석재 기자 2023. 6.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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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운주사 홈페이지

아주 오래 전, 운주사(運舟寺)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배를 움직이는 곳,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아직 그 끝물이 채 가시지 않은 더위의 꼬릿가 흔적들이 철늦은 구슬땀 되어 속살에 맺혔습니다. 남도땅, 얕은 구릉의 능선들 새로 살포시 스며든 길다란 분지. 그곳에 그 터가 있었습니다.

운주사(雲柱寺)라고도 합니다. 구름이 머무는 곳.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일부러 들리지 않는다면야 누구라 지나가랴 여길만큼 고즈넉한 그 한 뙈기 양지(陽地). 그곳에 채 깨지고 무너지고 부서져내리기 다하지 않은, 의뭉스레 알싸한 단내를 풍기는, 곰삭은 염원(念願)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농염한 달빛 밝은 보름이면 승려들이 모여들어 서로 물건을 바꿔갔다는 중장터에서 버스를 내려 총총히 낮은 비탈길을 걸어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속으로부터 풍겨나오는 설익은 구도자(求道者)의 냄새를 맡았을 법했습니다. 그곳은 비범했습니다. 도선대사가 하룻밤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세워놓았다는 그곳,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 숱한 반노(叛奴)들이 민중의 소망을 담아 불탑을 만들었다는 그곳. 하나 많은 학자들이 신라도 조선도 아닌 고려 중후기에 세워진 불탑군으로 비정하는 곳. 분명 세워진 지 기껏 몇 년 무렵일 어색한 일주문을 지나자 수백 년 켜켜이 쌓인 짙푸른 이끼와도 같은 갈망의 자취가 짙게 풍겨졌습니다.

참으로 추악했습니다! 바위 밑 그늘에 비스듬히 지친 몸을 기대고 있거나, 쭈글쭈글한 마애(磨崖)에 흐릿한 형상으로 남아있거나, 쪼갠 파편에 망치와 정 자국 몇 줄 그어놓은 모습으로 때로는 비슷비슷한 옆자리 불상에 몸을 의지해 있거나, 아예 땅 위로 목만 남겨놓은 그 불상들의 모습은 일견 비참하고 궁상맞아 보였습니다. 탑들은 또 어떠했는지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선(斜線) 몇 줄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거나, 둥근 핫케익을 하나씩 포개놓은 듯 하거나, 심지어 ‘거지탑’이라 부를만큼 아무 돌이나 주워 올린듯한 탑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수백 년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닳을 대로 닳아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비뚤어지고, 아귀가 맞지 않고, 가지런하지 않은 모습들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었습니다.

추악했습니다. 아니, 추악한 건 제 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균형과 조화를 아름다움으로 생각해 온 고정관념적 미의식을 부지불식간에 전수받아 체화시킨 것이었을까요. 사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논산 관촉사의 미륵불, 고창 선운사의 마애불… 고려시대의 불상들이란 저 빛나는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화려한 양식미를 일거에 말아먹어버린, 못난 후손들의 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역사란 항상 진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내는 좋은 실례(實例)이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정말로 그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땅에 발붙일 제 자리 하나 찾지 못해 이리저리 띄엄띄엄 어색하게 도열한 그 불탑들에서 문득 저는 이상한 기(氣)가 온몸에 전해옴을 느꼈습니다. 그건 아마도 잠실역이나 노량진역을 지나갈 때마다 소매를 붙잡고 물어보던 “…에 대해 관심있으십니까?”라는, 멀쩡해보이는 젊은 사람들의 질문에 나올만한 기(氣)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인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아, 저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잖아!

그 ‘민짜’에 가까운 무뚝뚝한 얼굴들, 두 손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나 지권인(智拳印)으로 부여잡은 모습들은 한결같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건 밤늦게 촛불을 켜놓고 가슴을 치며 집단으로 통곡하는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즉각적이고 즉자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정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와불.

―세상에, 그들 모두는 북극성(北極星)을 중심으로 배치됐다고 합니다.

만들다 만 듯한, 연습삼아 조각한 듯한, 일부러 못 만든 듯한 그 불상들에게서 번져나오는 그 타는듯한 염원들은 수없이 많은 밤과 낮, 아니 영겁(永劫)의 업이라도 능히 기다리고 감내할 수 있다는 묵묵한 끈질김이었습니다. 비 오면 비를 맞고, 눈 오면 눈 맞으며, 바람 불면 바람에 몸을 맡겨가면서, 애초부터 그들의 갈망이란 일조일석(一朝一夕)은커녕 그들의 대(代)를 몇십 개씩은 훌쩍 뛰어넘어 먼 미래를 바라보는 묵시적 갈구를 자신들의 몸 안에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투박하고, 질박하며, 솔직하고, 소박한 그 모습들은 크고 작고 어긋나고 비뚤어진 강약(强弱)과 고저(高低)의 악보를 거치는 사이에 골짜기 전체를 거대한 교향곡으로 오케스트레이션하고 있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들을! 그 세월들이 진실로 다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겠으랴마는.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을 내거나 폼을 잡거나 위엄을 갖추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일상과 격리된 지존(至尊)의 자리에 높이 앉아있음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풍우(風雨)에 휩쓸린 바위나 나무, 풀뿌리들과 똑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임을 처음부터 자처한 것만 같았습니다. 룽먼이나 아잔타나 타지마할이나 세인트 피터의 그 존귀하고 위풍당당한 정서는, 그 골짜기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면면히 저 낮은 곳에 내재돼 흐르는 그 갈망과 희구를. 장대한 대리석 위에 앉혀진 성전(聖殿)이 아닌, 밑바닥 여항(閭巷)의 땟국 흐르는 살림살이에 처하고자 했던 그 고뇌와 만난(萬難)을. 그들은… 넉넉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웠습니다.

고 민석홍(閔錫泓) 교수는 일찍이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품들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비범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지 않은 범상인도 차디찬 생명없는 대리석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힘차게 탄생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다.” 대리석도 아니요, 르네상스기의 과학적 조화와도 거리가 먼 이 쉬이 부서지는 돌들에서도 또한 그 ‘생명’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면서 조금씩 달라져가는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와불(臥佛) 앞에 섰습니다. 한 철학자가 운주사를 ‘한국의 잃어버린 마야잉카’라 칭송하고 “좌불은 왜 누었는가/ 깨어나라 한얼아”라고 탄식한 그 와불입니다. 채 못 일으켜 세운 커다란 부처 두 분이 넙죽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애초 계획한 대로 일으켜 세웠더라면 운주사의 중심불이 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어서는 날이 오면, 오 세상에,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돌부처가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

그들의 못다한 꿈들이 깨어나는 그 날. 층층이 쌓인 억겁의 한(恨)을 딛고 일어서는 그 날, 돌쩌귀와 파편들 하나하나에 밴 그 ‘바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날, 면면(綿綿)하고 도도(滔滔)하게 이어지고 이어진 그 전통과 역사와 문화들의 총체가 다시금 빛을 발하는 날. 그 날은 세계를 아(我)와 타자(他者)로 이분하고 모든 비아(非我)들을 일거에 절멸시키고자 하는 날선 광신이 아니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반드시 복수의 피를 흘려야만 멈추는 문명의 가식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업(業)과 업들을 한데로 끌어안아 모든 중생들에게 진정한 포용과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대오(大悟)의 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대 아는가 증오를

복수가 지옥의 큰 북을 난타하여

우리들 능력의 지휘자가 됐을 때

남몰래 오그라드는 주먹이며 원한의 눈물을

어진 천사여, 그대 아는가 증오를

―샤를르-피에르 보들레르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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