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아스!" 멕시코 아재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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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주간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함께 보는 게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친구 아들이 사는 먼 타국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낯선 한국 아재들에게 주저 없이 다가가 멕시코 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의 후박(厚朴)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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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주간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함께 보는 게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남편은 의학 드라마나 범죄 수사물을 좋아하는데, 나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나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예능을 좋아한다.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어 일상 속 이야기들이 주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최신편을 함께 보았는데, 평균 연령 61.5세의 멕시코 아재들이 등장했다. 순박한 그들의 모습은 역시나 보는 내내 절로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친구 아들이 사는 먼 타국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낯선 한국 아재들에게 주저 없이 다가가 멕시코 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의 후박(厚朴)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평생 본 적 없는 생경한 모양새인 곱창구이 앞에서도 소년들처럼 눈을 빛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저들처럼 거짓 없이 순수하고 다정다감한 어른으로 나이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울컥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는데, 바로 낙원상가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두워진 상가 뒷골목을 걸으며 그들이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거리의 조명 간판들까지 모든 게 너무 예쁘다며 시선을 들어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친구 아들인 크리스티안에게 무심하게 툭 건넨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너한테는 별거 아닐 수 있는데, 나한테는 이 거리가 마치 마법 같아." 그리고, 이어진 다음 말에서는 기어이 맺혔던 눈물이 흘렀다. "영화를 보면 닿을 수 없는 그런 곳들이 나오잖아. 영화를 보면 만져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어. 내가 지금 그런 곳에 있어." 그는 한 손을 뻗으며 그 순간 자신이 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감정을 친구 아들에게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뻗었던 손으로 가슴을 짚으며 말했다. "아, 너무 굉장하다. 믿을 수가 없어. 마치 꿈만 같아."
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밤거리, 심지어 낡고 오래되어 쇠락해 보이기까지 하는 낙원상가 뒷골목 밤 풍경에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멋지다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그들에게서 뭉클함을 느낀 건 내 지나친 감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날마다 오가는 거리, 늘 봐 오던 골목 풍경, 새로울 것 없는 공기, 꼭 그렇게 맨날 보던 가족·이웃·동료·사람·사람들···. 그 속에서 감흥 없이 무덤덤한 태도로 그저 바쁘게만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행복과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줄 모른다면, 불만과 불평만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련과는 거리가 먼, 낡고 오래된 종로 3가 낙원동 골목 가로등 불을 배경 삼아 비틀즈 못지않게 멋진 기념사진을 남긴 멕시코 아재들의 모습은 그날 우리 부부에게 진한 감동을 남겼다. 이미 아는 사람도, 습관처럼 오가던 거리와 익숙한 공간도 오늘 처음 경험하듯이 대하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심리치료에서 쓰는 '마음챙김'(mindfulness) 기법은 바로 이들이 몸소 보여준 '새롭게 보기'와 다르지 않다. 새롭게 보자. 마치 오늘 처음 본 듯.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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