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위 유혈진압·타임오프 옥죄기, 정부 균형 잃었다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관 4명과 소방대원 2명이 사다리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올라가 김 사무처장의 머리를 경찰봉으로 내리쳤고, 김 사무처장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임금교섭과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노동자를 힘으로 제압한 것이다. 하루 전에는 지상에서 농성 중이던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도 경찰이 머리를 바닥에 짓이기고, 강력범처럼 수갑을 뒤로 채워 연행했다. 서울 도심에서 31일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서는 윤희근 경찰청장이 예고한 캡사이신 분사 기구가 다시 등장했다. 야간문화제에서는 경찰이 분신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시민분향소를 철거하면서 충돌해 노조원 4명이 체포됐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과거 시위를 원천봉쇄한 군사정권이나 광화문에 ‘명박산성’이 세워지던 공안정국의 그늘이 2023년 한국에 드리워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집회시위 강력대응 발언 후 뚜렷해졌다. 보수언론의 건설노조 야간 집회 공격에 정부·여당이 가세하고, 경찰이 ‘노조 몰아치기’ 선봉으로 나섰다. 진압봉을 휘두르며 집회·농성·시위 현장의 유혈·부상 사태가 줄 잇고, 시위자들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은 격해지고 있다. 고공농성자를 강제로 체포한 일도 이례적이고 오랜만이다. 공권력 스스로 과잉 진압 시비의 중심에 서 버렸다.
한국노총은 1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 불참을 선언했다. “금속노련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대정부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정부가 집권 1년 만에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거취까지 논의하며 다시 터보려던 ‘사회적 대화’는 기약없이 물거품됐다. 한쪽에선 ‘대화 파트너’로 손 내밀고, 다른 쪽에선 진압봉을 휘두르다 벌어진 일이다. 노·정 갈등이 최악의 암흑기로 치닫고 있다.
노동 홀대는 강경 진압뿐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한 달간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 제도는 일정한 노조 활동 시간에 대해 회사가 유급 처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회계 장부·건폭 노조·타임오프 실태조사에는 유독 노조 활동만 눈엣가시 삼는 ‘기울어진 정부’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걸핏하면 ‘법치’를 앞세워 노조를 무릎 꿇리는 데만 몰두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일방적·편향적 노동 정책과 공권력 행사를 막는 차단막이 되어주어야 한다. 수레의 두 바퀴처럼, 노사는 국정 현안마다 머리를 맞대야 할 두 축이다. 정부는 끝까지 노사 간 중재자 역할에 주력하고, 노사정의 대화·신뢰 복원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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