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가 거센 ‘소비 보이콧’ 파도 일으킨다

성유진 기자 2023. 6. 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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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좌우 정치 성향이 보이콧 시발점, 중국에서는 외국기업에 ‘보이콧’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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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키드 록(52)이 강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록은 트럼프의 대선 캐치 프레이즈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문구의 이니셜(MAGA)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탁자 위에 ‘버드라이트’ 맥주 캔을 쌓아놓고 반자동 소총을 수십 발 발사해 전부 박살내버린다.

최근 미국 소셜 미디어에는 이런 종류의 영상이 넘쳐났다. 버드라이트 캔을 내던지고, 상자를 불태우고, 냉장고에서 치웠다. 버드라이트가 공개적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에게 특별 제작한 맥주 캔을 선물로 보낸 것이 도화선이었다. 트랜스젠더에 거부감이 큰 보수 성향 소비자들이 거칠게 불매 운동을 벌였다.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에게 그의 얼굴이 담긴 특별 제작 맥주 캔을 선물로 보냈다가 불매 운동에 시달리고 있다. /딜런 멀바니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버드라이트 판매량은 불매운동 여파로 지난 4월 첫째 주에 전년 대비 11% 감소했고, 지난달 둘째 주에는 내림 폭이 28%까지 커졌다. 만회하려고 할인 행사를 확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같은 기간 경쟁 브랜드인 쿠어스라이트(17%)와 밀러라이트(15%)는 모두 판매량이 증가하며 이득을 봤다.

특정 제품을 구입하지 말자는 운동을 전개해 기업 행동을 바꾸려는 ‘소비 보이콧’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가치관에 맞는 제품에만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소셜미디어 발달로 보이콧을 다수에게 독려하기가 쉬워진 영향이 크다.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정치 양극화가 뚜렷해지면서 좌우 양쪽이 모두 정치적 이슈에 연동시킨 보이콧을 빈번하게 전개하고 있다. 주간지 뉴스위크는 “오랫동안 진보 진영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불매운동이 이제는 친기업 성향의 우파 진영에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 소비 보이콧은 무대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소비 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잦다. 중국에서는 애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특정 해외 기업의 상품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중시하는 이들은 러시아처럼 국제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국가에서 철수하라며 글로벌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의 보이콧을 진행하기도 한다. 보이콧이 기업의 매출과 주가, 평판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들은 저마다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보이콧 부른다

근년에 벌어지는 불매운동의 특징은 나이키를 상대로 20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두 가지 보이콧을 비교하면 엿볼 수 있다. 1996년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12세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듬해엔 베트남에 있는 나이키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대대적인 나이키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빗발치는 개선 요구를 받아들여 1998년 나이키는 최저 근로 연령 상향, 공장 모니터링 강화 같은 대책을 내놨다.

20년 후인 2018년 나이키는 다시 한번 불매운동에 직면했다. 소셜미디어에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거나 갈갈이 찢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쏟아졌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였던 콜린 캐퍼닉을 나이키가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는 게 이유였다. 캐퍼닉은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를 부르지 않고, 대신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한 인물이다. 20년 전 노동 환경 문제에서 보이콧이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의견 차이가 보이콧을 촉발한 것이다.

나이키 사례에서 보듯 과거에는 인권, 환경, 노동 분야 논란이 보이콧의 시발점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대선 무렵부터 미국에선 정치적 성향 차이로 인한 불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금융 서비스 업체 렌딩트리가 작년 미국 소비자를 조사했더니 4분의 1이 소비 보이콧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가장 흔한 불매 동기가 정치적 의견 불일치였다.

기업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기부했기 때문에 불매한다는 답변(39%)이 가장 많았고,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34%)는 그다음이었다. 환경 피해(21%)나 비윤리적 사업 모델(15%)을 꼽은 응답자는 비교적 적었다. 렌딩트리 수석 분석가인 맷 슐츠는 “우리 편이 누군지 가르는 정치가 미국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20년 식품 업체 ‘고야 푸드’는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를 칭찬했다는 이유로, 베개 회사 ‘마이 필로’는 CEO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최근엔 미국 기업의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보수 성향 소비자의 불매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특히 LGBT(성적 소수자)에 우호적인 기업을 거세게 공격한다. 유통 업체 ‘타겟’은 지난달 매장에 트랜스젠더용 의류를 진열했다가, 초콜릿 업체 허쉬는 지난 3월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정판 제품에 트랜스젠더 모델을 썼다가 보이콧에 시달렸다.

‘국가 불매’에 글로벌 기업들 수난

개별 국가 범위를 벗어나 글로벌한 차원에서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현상도 근년에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거대한 시장의 힘을 지렛대 삼아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글로벌 기업들에 타격을 입히는 방식의 보이콧이 점점 늘고 있다. 불매운동에 중화주의적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스웨덴 공공 싱크탱크인 스웨덴국립중국센터에 따르면, 중국에선 2008~2021년 최소 90건의 외국 기업 불매운동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78건이 2016년 이후 벌어졌다. 아시아 비하 광고로 논란이 된 돌체앤가바나처럼 개별 기업이 잘못이라며 몰아붙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만 독립이나 홍콩 시위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벌어진 보이콧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스웨덴 패스트패션 업체 H&M은 서방과 중국의 주요 외교 갈등 소재인 신장위구르 지역의 강제 노동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가 재작년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그해 2분기 H&M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28% 급감했다. 역시 신장위구르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 아디다스의 중화권 매출도 같은 기간 16% 줄었다.

서방국가 소비자들은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에서 즉시 철수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 잇따라 거부감을 표시했다. ‘보이콧 코카콜라’ ‘보이콧 맥도널드’ 같은 해시태그가 번졌고 이들 기업은 결국 2주 만에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엘리자베스 브로우는 “지정학적 갈등으로 기업들은 보이콧을 피하기 위해 해당 지역 시장을 잃거나, 계속 머물면서 평판에 손상을 입거나 중에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했다.

2020년 무슬림 국가들의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 당시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던 불매 제품 목록.

국가 간 갈등이 보이콧으로 이어지는 일도 빈번해졌다. 2020년 10월 카타르와 쿠웨이트 등에서 프랑스 기업 불매운동이 번졌다. 당시 프랑스에선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수업에 사용한 교사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숨진 교사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풍자 만평을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자 무슬림 국가들에서 반발이 커졌다. 수퍼마켓 진열대에서 프랑스산 잼과 치즈, 생수가 사라졌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평이 불러일으킨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진화에 나서야 했다.

고소득층, MZ세대 참여율 높아

요즘에는 불매운동이 온라인을 무대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프랑스 오덴시아경영대학원이 2020년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 4국을 연구한 결과 온라인에서 보이콧 동참 요구를 접한 소비자는 29%에 달한 반면 오프라인에선 15%에 불과했다. 실제로 요즘은 대부분의 보이콧이 불매 문구와 불매 대상 목록을 담은 이미지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불매운동에 적극적인 이들도 역시 온라인 활동 비중이 높은 젊은 세대였다. 같은 조사에서 18~24세 영국인의 74%가 불매운동에 참여한 데 반해, 45~54세(44%), 55세 이상(44%)에선 참여율이 떨어졌다.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역시 20·30대가 다른 세대보다 비교적 불매운동 참여율이 높았다.

또한 고소득자일수록,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보이콧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렌딩트리 조사에서 연소득 10만달러 이상 소비자는 37%가 보이콧에 동참했지만 3만5000달러 이하 소비자는 참여율이 16%에 불과했다. 저소득층일수록 브랜드 평판보다는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민주당 지지자(31%)가 공화당 지지자(24%)보다 불매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성별로는 남성(29%)이 여성(21%)보다 참여율이 높았다.

‘정치적 소비’ 바이콧 확산

최근에는 보이콧과 반대로 특정 기업이나 상품을 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운동을 말하는 바이콧(buycott)이 힘을 발휘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바이콧은 ‘정치적 소비’라는 특징이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칭찬한 ‘고야 푸드’가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에 반트럼프주의자들이 고야 푸드의 제품을 버리는 영상이 쏟아지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고야 상품을 쓸어 담는 영상을 올리며 반격했다. 고야 푸드 매출은 2주간 22% 늘었고, 특히 공화당 성향이 강한 지역에선 판매가 56% 급증했다.

모든 보이콧·바이콧이 매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 상당수 불매운동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단기간 폭발했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사과하거나 개선책을 내놓은 기업이 많다. 소비자 요구를 무시하는 기업으로 평판이 나쁘게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평판이 나빠진 기업은 주가 하락을 겪거나 소송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추가적인 규제 감시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난달 트랜스젠더용 의류를 매장에 진열했다 보이콧 위협을 받은 타겟이 불매운동으로 주가가 하락한 사례다. 불매 움직임이 시작되고 회사가 일부 제품을 철수했다고 밝힐 때까지 회사 주가는 일주일 새 12% 이상 하락했다. 시가총액으로는 80억달러(약 11조원)가 일주일 사이에 증발했다. 전문가들은 회사 주고객층이 성 소수자 이슈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여성들이라 타격이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버드라이트’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부각돼 주가 하락을 불렀다.

페이스북은 2020년 혐오 게시글을 방치한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광고를 주면 안 된다”는 보이콧에 시달렸다. 당시 페이스북은 매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결국 혐오·증오 게시물을 단속하는 규정을 잇달아 마련했다. 혐오 표현과 루머의 진원지라는 부정적 평판이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브레이든 킹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1990~2005년 전국 언론에 보도된 소비 보이콧을 분석한 결과 144개 회사 가운데 53개 회사가 보이콧 참여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기업들은 판매 감소보다 평판 하락 위협을 더 심각하게 여겼다”고 했다.

“회사 실수면 빨리 사과하라”

마케팅 전문가들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기업의 잘못으로 벌어진 보이콧에는 빠른 사과와 적절한 대책 발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창주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보이콧이 당장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브랜드와 명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부정적 평판이 계속 쌓이면 나중에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와 달리 가치관 차이나 국가 간 갈등에서 촉발된 경우에는 대처가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과감하고 냉정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예컨대 나이키는 2018년 불매운동 당시 “우리가 해온 일이 자랑스럽다”며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편에 선 콜린 캐퍼닉을 계속 광고 모델로 기용했고, 결과적으로 충성 고객을 늘릴 수 있었다. 당시 나이키는 자사 고객들의 특징을 잘 꿰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올해 버드라이트는 불매운동이 벌어진 후 2주 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토론의 일부가 될 의도가 없었다”는 애매모호한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성명문은 보이콧을 벌인 이들을 더 화나게 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단체의 반발까지 불러왔다.

중국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회사 중에서는 버버리가 피해를 최소화시킨 사례다. 버버리는 신장위구르 지역의 강제 노동에 비판적이었지만 중국 내 반발에도 무대응 전략을 고수해 매출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반면 스페인 패스트패션 업체 자라는 강제 노동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이후 슬그머니 성명을 홈페이지에서 지웠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에선 비난 여론이 더 커졌다. 박정은 이화여대 교수는 “기업이 사과해야 할 이슈가 아니라면 차라리 해당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마케팅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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