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의 그.래.도] 더 이상 두렵고 싶지 않아

한겨레 2023. 6. 1. 1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소민의 그.래.도]나는 내 인생이 내 것 같지 않다. 방어전만 치렀다. 대학 못 가면, 정규직 못 되면, 대놓고 차별하겠다는 으름장에 벌벌 떨며 하라는 대로 달렸다. 내 삶의 동력은 불안이다. 에리히 프롬은 끊임없이 활동한다고 주체적으로 사는 건 아니라고 했다. 동기가 중요하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뛴다면 “행위자가 아니라 수난자”다.
지난해 4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탑승 시위를 마친 후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소민 | 자유기고가

한 20대 여자가 한 말에 충격받았다. “어떤 가치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 항로가 결정되잖아요. 평화는 가망 없는 목표 같잖아요. 그 불안을 감수하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이 평화활동가들이더라고요.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진지했다. 평화라고? 가치라고? 나는 평생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 예전에 나라면 ‘뜬구름 잡는 소리 하고 있네’ 했을 테다. 40대 후반인 나는 그가 부럽다. 나는 했어야 할 질문을 하지 못하고 인생 전체를 도망치는 데 써버린 거 같다. 두려움으로부터 도망 말이다.

친구는 요즘 밤마다 한탄한다. “무시당할까 봐 무서워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너무 애써왔어. 내가 가진 헛된 자아상이 훼손될까 두려워서, 쓸데없는 것들을 지킨다고 에너지를 다 써버렸어. 그게 다 뭐라고. 그게 나도 아니었는데.” 홍은전이 쓴 장애인활동가들 인터뷰집 <전사들의 노래>를 읽고, 두 중년 여자는 새치를 뽑으며 탄식한다. 인생을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이 책은 무모한 싸움에 자기를 다 던져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자기 자신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박길연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은 인생에서 잘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라고 답한다. 그는 20대에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 뒤 16년을 집에서만 지냈다. 40대에 처음 장애인 모임에 나갔다가 한글도 배우지 못한 동료를 만나 충격받는다. 야학을 연다. 월세를 내려고 껌도 팔고 사탕도 판다. 그 야학에서 살고 싶다는 장애인들이 있다. 활동지원사가 없던 시절, 밤새 화장실도 못 가고 추위에 떨면서도 야학에서 인간으로 살겠단다. 줄줄이 시설에서 나오겠단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몰라, 몰라” 그러면서 그는 결국 007작전을 벌여가며 이들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한국에서 탈시설 운동이 벌어지기 전이다. 그의 오른쪽 손목은 경찰과 싸우다 꺾인 채 돌아오지 못했고 왼쪽 팔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요구하며 오체투지할 때 ‘아작’이 났다. 그는 “그때 몸 사리지 않은 거 참 잘했어”라며 자신을 두 팔로 껴안는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장애여성단체 공감을 만들고, 이동권을 요구하며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한강다리를 기어 건넜다. 그런 그가 1984년 장애인 시설에 제 발로 들어가려 했다. 허허벌판에 비닐하우스 두동이 있었다. 거기서 살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면 깜깜한 창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사위가 밝아지면 얼굴은 사라졌다. “힘들 때 나를 바라보면 내가 보인다는 걸 잊지 않으며 살아왔어요….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나 같은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어요.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내 모든 것을 쏟아야 할 만큼 나는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죠.” 그는 앉아서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걸 증언한다. 그가 선택한 여행이고 그의 얼굴이다.

나는 내 인생이 내 것 같지 않다. 방어전만 치렀다. 대학 못 가면, 정규직 못 되면, 대놓고 차별하겠다는 으름장에 벌벌 떨며 하라는 대로 달렸다. 내 삶의 동력은 불안이다. 에리히 프롬은 끊임없이 활동한다고 주체적으로 사는 건 아니라고 했다. 동기가 중요하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뛴다면 “행위자가 아니라 수난자”다.

“두려움은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이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괴로웠다. 두려운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에너지를 자기를 지키는 데 쓰니 남을 볼 여력이 없다. 타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두려운 사람은 두가지 방법으로 도피한다. 권력에 복종하거나 부정적 감정을 약자에게 투사해 공격한다. 그래서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움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했다.

더 이상 두려움에 쫓기며 살고 싶지 않다. 나도 삶의 주체로 사는 희열을 맛보고 싶다. 그런데 매일 2명씩 일터에서 죽고, 하청노동자는 진짜 사장과 교섭도 못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예산은 깎으면서 부자들 세금 부담은 덜어주고, 소득불평등이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두번째로 빠른 속도로 심해지는 곳, 약한 것을 악한 것으로 여기는 곳에서 쫄보인 나는, 인간으로서 내 존엄을 지킬 수 없을 거 같아 자꾸 두렵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