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문파가 개딸로 바뀌었을 뿐인데

이우연 2023. 6.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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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5월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우연 | 정치팀 기자

기자가 된 뒤 첫 출입처였던 더불어민주당을 2년 만에 다시 출입하게 됐다. 많은 사람이 이전에 출입했을 때와 지금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있냐고 묻는다. 두달을 넘긴 지금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달라진 것은 ‘친문’에서 ‘친명’으로 바뀐 당내 주류다. 여당 시절 주류였던 친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두번의 대선을 겪으면서 형성된 남다른 동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부·여당에 민감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비주류 의원들은 그런 친문을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조국 사태’가 벌어진 2019년 말 식사 자리에서 “친노들은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받으며 더 똘똘 뭉치게 됐고 이런 정서적 유대가 친문이라는 계파로 이어졌다. 이들의 수장이 대통령이 됐으니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원내에서 몇 안 되던 친명계가 대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주류가 됐고, 친문계 핵심들이 비주류가 됐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은 유력 정치인과 이를 위시한 당내 주류다. 친문 지지층 ‘문파’가 친명 지지층 ‘개딸’로 바뀌었을 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에 대한 문자 공격과 비난은 여전하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양념”이라는 표현으로 강성 팬덤의 행위를 용인 내지 방관했으나, 이재명 대표는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수락하고 지지자들의 ‘가좍’(가족) 놀이에 동참하는 등 팬덤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한다는 차이가 있다.

여러 풍경 속에서도 제일 놀라웠던 것은 이런 현상을 처음 보는 듯 비판하는 의원들의 모습이었다. 한때는 주류였고, 지금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현재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개딸 현상’을 비판하는 의원 중 몇몇은 한때 ‘문파’들의 문자 공격을 “쓴소리”로 치켜세웠던 이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비판을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때도 그런 말 좀 하지’란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민주당 내 강성 팬덤 문제는 하루이틀 된 문제도 아니고, 당연히 이 대표만의 문제도 아니다. ‘개딸과의 단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당이 분열과 적대의 목소리에 잠식된 것에 반성하는 이들을 민주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 하나 폭력적인 문화를 만든 것에 책임지겠다는 선언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친명계도 ‘강성 팬덤과 절연하라’는 목소리를 다른 계파의 공격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한 친명계 의원은 “팬덤에 기대서 최고위원까지 한 의원들이 인제 와서 팬덤이 문제라고 말하는 걸 보면 한심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남 탓을 하고 개딸이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인 ‘아미’와 같으니 마느니 같은 말장난만 오간다.

몇주 전, 원외 청년정치인 8명이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기 논란’에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고 송구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공격받았다. 이 중 한명에게 ‘공격받아서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우리 당이기에 그저 감내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이 탄핵 찬반 명단을 공개한 뒤 전화번호가 유출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집단적 문자 공격이 쏟아졌으나 이를 용인했던 사례, 문재인 정부가 상대를 없어져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적폐청산’이라는 용어를 쓴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우리 당이 적대적 정치문화를 용인하고 여러 사례가 누적돼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처절한 반성 없이 과격한 표현을 줄이라는 말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라고 했다.

청년정치인도 알고 있는 민주당의 책임을, 의원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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