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료와 형광등

한겨레 2023. 6. 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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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미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치지 않는 논쟁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조미료(MSG)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온 조미료 ‘아지노모토’는 육수 내기 까다로운 우리의 대표음식 냉면을 집중 공략했고, 들인 노력에 비해 고객들이 음식 맛에 열광해 식당주들을 사로잡았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국내기술로 국산 조미료가 발매되자 많은 주부에게 맛의 비밀로 불리며 수십년 우리 밥상의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유무해(有無害) 논란에 휩싸이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자연재료가 아닌 화학재료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여기에 냉면 육수를 오로지 조미료의 조합으로만 만드는 일부 식당들의 실태가 언론에 폭로되며 이 의구심은 폭발한다. 2010년을 전후해 학자들과 식품업계의 증명을 통해 화학조미료라는 인식은 벗어났지만, 지금까지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몸에 좋다·나쁘다’ 문제 뒤에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 논쟁이 있다. 감칠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과 함께 기본적인 맛으로 분류되고 ‘식욕을 당기는 맛’으로 정의된다. 감칠맛은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강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중독성 때문에 한번 노출된 사람들의 입맛을 강하게 구속한다. 음식을 맛있게 해주는 감칠맛은 또한 다른 맛을 가리고 우리의 입맛을 더 단순하고 의존적으로 이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유럽에 여행 온 한국인이 한결같이 하는 불평이 있다. “여긴 실내건 길가건 밤에 왜 이리 어두워?” 이 말은 거꾸로 우리는 밤에 집이건 길거리건 훨씬 밝은 환경에서 산다는 의미다. 한국인을 밤의 어둠에서 해방한 공로는 뭐니 뭐니 해도 형광등에 돌려야 한다. 형광등은 유리관 내벽에 발린 형광물질이 필라멘트의 방전된 자외선과 반응해 밝은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기체발광식 조명인데 (더 효율이 좋은 엘이디(LED) 조명으로 대체될 때까지) 전력소비 대비 빛효율이 좋아 한국의 대부분 집을 점령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도 대낮처럼 집을 밝힐 수 있게 했고, 상점과 식당가의 불야성도 가능하게 해줬다. 이제는 은은한 조명의 실내에 들어가면 어둡고 침침하다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이른바 ‘빛 중독증’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밝은 형광등을 왜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걸까? 유럽의 경우 사무실과 공장, 지하철역 구내에만 쓰지, 집에서는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형광등 빛의 색과 밝기가 인간의 생체리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대부분 가정에서 사용하는 푸른빛을 띤 백색인 ‘주광색’ 형광등은 색온도 6000K(켈빈온도) 정도인데 이는 한낮의 태양광 색깔과 거의 비슷하다. 반면 노르스름한 백열등은 3000K 이하이고 저녁 태양광 색에 가깝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서구 대부분 가정에서 형광등보다 백열등을 선호한다. 불을 켜야 하는 저녁에 형광등은 한낮의 빛 색깔과 밝기를 내기 때문에 생체리듬을 인위적으로 대낮으로 돌린다. 형광등의 색과 조도는 오직 일하기에 적합하다. 서구인이 한국에 오면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유다.

중독이 무서운 것은 그 의존성 때문이다. 수만년 진화해 온 인간의 생체리듬은 한낮에는 밝은 빛에, 저녁에는 어둠에 맞춰 있다. 외국여행 때 시차 때문에 컨디션이 망가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빛이라는 자극에 중독되는 게 무서운 이유는, 그것에 중독돼 의존적이 됐다는 사실마저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얗고 밝은 빛에 중독됐다는 것은 집에서도 ‘일하는 것처럼’ 지낸다는 의미다. 자려 눈감는 순간까지도 일하기 적합한 한낮의 빛이 편하다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밤에라도 형광등을 끄고 은은한 조명으로 바꾸는 작은 용기는, 일 강박증에서 자연의 리듬대로 자신의 몸을 ‘비로소’ 쉬게 해주는 큰 행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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