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화가' 도 돌아가고 싶은…그 때 그날의 오후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점심'
"그림은 유쾌하고, 밝고, 예뻐야만 해"
푸르네즈 레스토랑 단골 르누아르
14명의 인물은 실제 그의 절친들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성이
뮤즈이자 아내 알린 샤리고
자유시민의 느긋한 오후 일상
정물·인물·풍경 '독창적 구성'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자연적 욕망으로, 이는 식사, 음료, 주거 등 생존에 필수적인 욕망이며 만족시키면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다른 하나는 비자연적 욕망으로, 이는 부와 명예, 권력 등에 관련된 욕망이며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대신 불안과 고통을 초래한다.
인상주의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걸작 ‘뱃놀이 일행의 점심’은 자연적 욕망이 충족되면 참된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에 부응한다. 밝고 화창한 여름날 14명의 젊은 남녀가 파리 근교 센 강변 샤투에 있는 옥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만족감에 젖어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작품이 1882년 제7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됐을 때 비평가들은 ‘인상주의 최고의 그림’이라는 극찬을 보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르망 실베스트르는 “독립예술가들의 반란예술작품(혁신적인 인상주의 화가들과 화풍을 가리킴)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작품의 소장처인 필립스 컬렉션의 큐레이터 엘리자 래스본은 “르누아르의 작품에서 이 그림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이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구성의 독창성이다. 이 작품은 정물과 인물, 풍경, 세 가지 주제를 한 화면에 결합한 독특한 구성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흰 식탁보 위에 놓인 와인병과 유리잔, 과일들을 그린 부분은 정물화. 식탁을 둘러싼 14명의 젊은 남녀를 묘사한 부분은 인물화, 발코니 바깥 야외 경치를 그린 부분은 풍경화에 해당된다. 크기, 색상, 형태, 위치, 광원 등의 구성 요소들도 혁신적 방식으로 재조합했다. 예를 들면 인물들의 몸을 복잡하게 중첩시키거나 신체적으로 가깝게 배치했는데 이는 친밀감을 높이는 동시에 화면에 깊이와 공간감을 주기 위해서다.
주황색과 흰색 줄무늬의 넓은 차양은 인물들을 감싸는 역할을 하고 5개의 밀짚모자는 구성원들의 화목과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장 밝은 빛이 화면 왼쪽 위 발코니 바깥에서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서 있는 남자 사이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온다. 이 빛은 식탁 위를 거쳐 화면 오른쪽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 도달하기까지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하는 길에 배치된 인물과 정물에 눈부신 반짝임을 선사한다.
다음은 시대성이다. 걸작은 특정 시대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의 흐름과 변화를 포착해 시대성을 반영한다. 이 작품은 당시 파리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수상 레스토랑인 알퐁스 푸르네즈로 감상자를 안내하며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이동성이 향상돼 외식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휴일에 파리시민들은 기차를 타고 샤투에 와서 뱃놀이를 즐긴 후 푸르네즈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르누아르는 1868년 푸르네즈 식당을 처음 발견한 이후 단골손님이 됐다.
그는 1868년부터 1884년까지 약 15년 동안 정기적으로 샤투를 방문해 식당 주인 가족 초상화를 포함해 레스토랑 실내와 주변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 그림에 등장한 14명의 남녀는 르누아르의 가장 친한 친구들로 실존 인물들이다. 작은 개를 안고 있는 여자는 재봉사이자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인 알린 샤리고이며 두 사람은 1890년에 결혼했다.
흰색 보트 셔츠와 납작한 밀짚 보트 모자를 쓴 두 남자 중 서 있는 사람은 식당 주인 아들인 알퐁스 푸르네즈 주니어, 의자에 거꾸로 앉아 있는 남자는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이다. 이 그룹에는 노동자, 상인, 예술가 이외도 관료, 여배우, 언론인, 학자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됐는데 이는 당시 계급 구분이 해체되고 새로운 시민계층이 형성되던 시대적 변화상을 말해준다.
왼쪽 위 차양 아래 배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센강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과 근대 문물의 상징인 새로 건설된 샤투 철교가 보인다. 파리시민들은 이 그림 속 인물들처럼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센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여가를 즐겼다. 이 작품은 파리시민들의 변화된 일상생활이라는 현대적 주제를 혁신적 미술사조인 인상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업적으로 시대성의 표본이 됐다.
르누아르는 “그림은 유쾌하고, 밝고, 예뻐야만 한다. 현실은 유쾌하지 못한 부분이 이미 너무 많다”라는 말을 남길 만큼 행복한 순간을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로 유명하다. 장밋빛 인생을 그린 이 그림은 르누아르를 왜 ‘행복의 화가’로 부르는지 알려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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