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어차피 답은 이민인데…
이민으로 다시 활력 찾아야
체계적인 이민정책 수립해
효과는 극대화, 부작용 줄여야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을 장악하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른바 '황금시대(Golden Age)'다. 경상남북도 정도 크기에 늪지투성이 나라에서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근면한 국민성에 더한,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전통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럽 각지에서 박해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과 위그노교도, 학자와 상인들을 두 팔 벌려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6세기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해 무역과 금융업, 해운업, 보석가공업 등을 발전시켰다.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자이자 자본가들이었다.
동서고금 오랜 기간 번창한 국가치고 이민족에 포용적이고 개방적이지 않은 곳은 드물었다. 고대 로마에선 군역을 이행하면 이민족들도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속주나 적대국 출신의 황제와 집정관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영국, 서유럽 등의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이민정책을 통해 국가 융성을 꾀했다. 순혈주의·단일종교를 내세워 문을 닫아건 제국들은 잠시 강성함을 뽐냈을지언정, 빠른 속도로 쇠락해갔다.
세계 제패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이민 활성화는 한국 사회의 생존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인구 소멸로 치닫는 한국 사회 생존을 위해, 사그라드는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이민은 선택지가 아닌 필수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역대 1분기 최저 수준을 또 경신했다. 연간 합계출산율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게 뻔하다. 2006년 이후 수백조 원의 예산이 저출산 대책에 투입됐지만 저출산 해결은 요원하다.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3738만명에서 2040년 2852만명, 2060년 206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30년 후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장에서, 서비스업 현장에서, 농어촌에서도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극심한 일자리 미스매치로 생긴 빈 일자리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로 간신히 채워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간단치 않다. 고숙련·고학력 외국 인력은 굳이 한국을 택하지 않는다. 노동력 부족은 지금도 심각해 보이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란 게 더 무섭다.
이민정책 활성화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마법의 지팡이는 아니지만, 출산율 저하로 인한 경제활동 인구 감소, 성장 둔화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는 극대화하려면 체계적이면서 정밀한 이민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법무부가 이민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이민청 설립과 운영 방향에 대해 상반기 중 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기대도 크지만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조직 하나만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민정책 활성화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뒤바꾸는 엄청난 역사(役事)다. 숙고하고 머리를 맞대고 널리 의견을 들어야 한다. 속도감을 잃지 않되, 망원경과 현미경을 모두 들고 두 귀는 활짝 열고 접근할 일이다. 경제와 산업부터 법률과 치안, 문화와 교육, 노동과 복지, 정치와 외교 등 사실상 사회 전 분야에 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여전히 이민(주로 특정 국가 출신)에 대한 거부감이 큰 이들도 많고, 이민자 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이민청 설립에 대한 계획은 나왔으되, 그 이후의 작업은 '깜깜이'라는 점이다.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이민정책위원회가 있지만 좀 더 널리 의견을 구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은 부족한 느낌이다. 아쉽다.
[이호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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