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러시아군 총격’ 영상 올렸더니, 1분 만에 사라졌다

박병수 2023. 6. 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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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인스타서 ‘전쟁범죄 고발’ 영상 삭제 잇따라
인권단체 “책임자 단죄 위해 소중한 증거 보존해야”
언스플래시

끔찍한 전쟁범죄, 인권유린 현장을 고발하는 영상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자극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곧바로 사라지고 있다.

이들 영상은 나중에 전쟁범죄을 입증하고 책임을 묻는 데 유용한 증거로 쓰일 수 있지만, 소셜미디어 운영 업체들이 자사 플랫폼에 올라오는 대로 지워버리고 있어 사실상 범죄자들을 단죄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비시>(BBC)가 3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여행전문 언론인이었던 이호르 자카렌코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군의 무분별한 폭력을 고발하는 영상을 찍었다. 그는 1년 전쯤 도망치다가 러시아군 병사의 총에 맞아 숨진 여성과 어린이들, 불타버린 차량을 촬영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그 영상들은 곧바로 이들 플랫폼에서 사라졌다.

<비비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여러 계정으로 이호르의 영상을 올려 보았다. 인스타그램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영상 네 개 중 세 개를 내렸고, 유튜브는 처음에는 이들 영상에 나이 제한을 적용했다가 10분 뒤 모두 지워버렸다. <비비시>는 한 번 더 이들 영상을 올렸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곧바로 삭제당했다. 이들 플랫폼에 “이들 영상은 전쟁범죄의 증거“라며 복원도 요청해봤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3년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이마드는 당시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으로 피범벅이 된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현지 방송기자가 아비규환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나 이들 영상은 두 플랫폼에서 곧바로 삭제됐고, 원본 필름은 장기 내전의 혼란 속에서 사라졌다. 몇 년 뒤 이마드가 유럽에 난민신청을 했을 때 그가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걸 입증할 자료가 필요했다. 그는 “당시 현지방송 기자의 카메라에 우리 약국도 촬영됐다. 그래서 온라인을 뒤졌지만, 삭제된 영상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벌어진 참혹한 인권유린 현장을 고발하는 영상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곤 하며, 이런 영상은 나중에 전쟁범죄를 입증하고 책임자를 단죄하는 소중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의무’와 ‘해로운 내용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이런 영상을 일방적으로 지워버리고 있다. 이들 영상의 삭제는 주로 인공지능(AI)에 의해 이뤄진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해롭고 불법적인 내용물을 대규모로 가려내 한꺼번에 삭제할 수 있지만,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인권침해 내용물을 식별해 따로 다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3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차가 찌그러져 있다. 신화 연합뉴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 전쟁 영상의 경우 통상 삭제되어야 하는 내용물이라도 성인용으로 따로 분류되어 온라인에 남아있도록 처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비비시>가 확인해본 결과 실상은 이런 주장과 달랐다. 이에 대해 인스타그램 쪽은 “우리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국제적인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며, 유튜브는 “유튜브 플랫폼이 자료보관소는 아니다”며 “인권단체, 활동가, 연구자, 언론기관은 자신들의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영상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사라지기 전에 따로 보관하는 인권기구도 있긴 하다. 독일의 인권단체 ‘기억’은 인권 관련 영상을 소셜미디어에서 지워지기 전에 내려받고 저장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 단체는 처음에는 시리아 관련 내용을, 지금은 예멘과 수단, 우크라이나 관련 인권유린 고발 영상을 주로 저장하며, 관련 영상을 70만건 넘게 보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단체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영상이 그대로 사라지는 걸 막을 순 없다.

통상 누구에게나 전쟁터 접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전쟁범죄 입증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모아 조각을 맞춰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게 중요하다. 이들 영상은 전쟁터에서 어떤 인권침해가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베스 밴 샤크 미국의 글로벌형사정의 대사는 “우리는 미래 전쟁범죄 책임을 묻기 위한 정보를 보관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기꺼이 이런 메커니즘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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