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재선에 떠는 튀르키예 성소수자 공동체
“그들은 우리에 대한 증오와 폭력으로 가득 차있다. 이 나라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떠나야 할 것 같다.”
성소수자 옹호 집회에 나섰다가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 한 튀르키예 청년(26)은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 차별을 내세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튀르키예의 성소수자들이 두려움에 빠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했다.
튀르키예는 정치·사회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또한 시행 중이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 재선으로 사회가 극우화되면서 많은 성소수자들은 차별이 강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에르도안 진영은 성소수자를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LGBTQ는 일탈자”, “(동성애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LGBTQ는 가족이라는 제도에 주입된 독”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야당이 ‘성소수자 친화적’이라며 공세를 펼쳤다. 술레이무 소일루 내무장관도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면 인간과 동물의 결혼 또한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가세했다.
NYT는 “동성혼이나 입양, 트랜스젠더 건강권 확대와 같은 주요 이슈에서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이번 대선은 반성소수자적 수사가 두드러진다”며 “에르도안이 보수주의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이용했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20년간 튀르키예 성소수자 인권은 퇴행길에 접어들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보수적 이슬람 가치에 호소하며 “혼인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여성에게 세 자녀 이상을 갖도록 권장했다. 이 시기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폐쇄됐고, 2014년부터 이스탄불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금지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권리 운동에 대한 당국의 단속 또한 강해졌다.
이러한 흐름 위에 최근 선거에서의 공격적인 차별까지 더해지며 성소수자들이 실질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 당사자는 “정부가 증오를 퍼뜨림으로써 원래 폭력을 저지르지 않던 사람들에게까지 ‘그래도 된다’고 힘을 주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25)은 “튀르키예 역사에서 우리는 한번도 가시화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선거 때문에 모두가 우리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국제 성소수자 옹호 단체 ‘ILGA유럽’이 지난해 실시한 성소수자 인권 조사에서 튀르키예는 유럽 49개국 중 48위를 차지했다. 트랜스젠더 단체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튀르키예에서 트랜스젠더 62명이 살해당했다.
한 활동가는 “사람들이 겁에 질려 ‘길 한복판에서 공격을 받진 않을까’란 디스토피아적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일이 벌어지리란 것만으로도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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