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한국엔 왜 젠슨 황 같은 기업인이 없을까? / 곽정수

곽정수 2023. 6. 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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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3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정보기술(IT) 전시회 ‘타이베이 컴퓨텍스’에 참석해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곽정수ㅣ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미국 대표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봉쇄정책에 잇달아 반기를 들었다. 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가 실리콘밸리 기업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글로벌 전기차 1위 기업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도 중국을 방문해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반대한다”고 거들었다.

한국 기업인들도 미·일에 편향되어 중국·러시아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결코 작지 않다. 기업인들은 사석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쉰다. 차라리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 보이는 한국 기업인들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정부에 대한 지지와 찬양 일색이어서 같은 사람들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경제6단체는 논란이 컸던 대통령의 방일 및 방미에 대해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응원합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성과를 환영합니다”라고 지지광고를 실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대통령이 한·미·일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힘쓴 것에 중소기업의 85%가 긍정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을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결단으로 칭송하는 ‘윤비어천가’까지 틀었다. 뒤에서는 손가락질 하면서, 앞에서는 박수를 보내는 게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연상시킨다.

한국 기업인들은 과거 정권의 비위를 건드리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흑역사를 기억한다. 또 검찰 권력이 국정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검찰정권’에서 그 어느 기업인도 검찰의 칼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포감도 엄청나다. 윤 정부의 눈 밖에 났다가 사정당국으로부터 무차별 융단폭격을 받는 케이티(KT)가 대표 사례다.

기업인에게는 기업의 이익이 중요하지만, 국익과 충돌할 때는 양보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불분명하거나, 정부의 오판이 명확한데도 일신상의 안위만 걱정하며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고, 경영자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국의 가장 큰 수출시장으로 효자 노릇을 해왔다. 이런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구축한 삼성과 에스케이의 중국 생산 의존도는 품목별로 20~40%에 달한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지만, 경제적 충격이 없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이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완전 분리를 의미하는 디커플링 대신에 위험을 낮추는 ‘디리스킹’(탈위험)을 내세우며 전략적 유연성을 보인 것은 타산지석이다.

윤 정부가 미·일의 대중국 강경노선에 장단을 맞춰 망나니 칼춤을 추는 것은 한국경제에 해가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미·일이 한국의 국익을 챙겨주거나, 중국이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줄 리도 만무하다. 중국이 미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 제품에 대해 구매중단 조처를 내리자, 미국은 한국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워서는 안된다고 압박한다. 중국도 한국을 향해 미국 편에 서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제2 사드사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본은 미·중 전략경쟁의 틈새를 노려 과거 반도체 영광의 재연을 꿈꾼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중국 규제 동참 압박과 중국의 보복이라는 두 개의 칼날을 피하고 일본을 견제하면서 실리를 잃지않는 지혜가 절실하다.

2024년 총선은 결국 경제가 관건이다. 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고,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무역수지 적자가 갈수록 쌓인다. 고물가·고금리·고용난이 겹치면서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고통이 깊어진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부자감세, 약자복지 축소, 재정 건전성 강화라는 고장난 경제정책을 고집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한국경제의 ‘상저하고’를 호언장담하지만, 경제계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윤 정부의 위험한 외교안보 정책은 국민과 국가의 안위에 도움이 될지도 모호하지만, 한국경제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공산이 높다.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목적 중 하나는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 직결되는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 봉쇄도 결국 경제적 패권을 지키려는 게 목적이다.

최근 경제계에서는 윤 정부도 경제가 계속 어려워지면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흘러나온다. 윤 정부가 미·일 편향에서 벗어나 제대로 중심을 잡는다면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벌거숭이 임금님’이 현실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경제로서는 마냥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기업인들도 이제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우리 기업인들에게 엔비디아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와 같은 소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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