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박찬호와 류현진, K 비디오 아트(Video Art)

청주방송 2023. 6. 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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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와 류현진.

바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

그리고 한국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박현기'.

오늘은 그들의 비디오 아트(Video Art)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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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2022복원) 1988(2022),비디오 설치,4채널 비디오,컬러,사운드,모니터 1003대,1850x1100x1100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박찬호와 류현진. 이들의 관계는 특별하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개척자'라면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그 영향을 받은 메이저리거다.

예술계에도 이들처럼 영향을 주고 받은 'K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 그리고 한국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박현기'. 오늘은 그들의 비디오 아트(Video Art) 이야기다.

백남준 탄생 90주년이었던 지난해. 새 생명을 얻어 힘차게 재가동 중인 그의 '다다익선(多多益善,1988)' 기억하는가.

백남준 다다익선(2022복원) 1988(2022),비디오 설치,4채널 비디오,컬러,사운드,모니터 1003대,1850x1100x1100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다익선(1988)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걸작이다. 아트홀릭 독자들도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2018년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다다익선'(1988)은 4년의 복원을 거쳐 작년 9월 1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위용 만큼 다다익선은 백남준 생애 최대 규모의 걸작 임에 틀림 없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작품 설치 의뢰를 받은 백남준은 다다익선의 구조 설계는 건축가 김원에게 TV와 모니터 협찬은 삼성전자에 부탁했다고 한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된 다다익선. 임대근 학예연구관(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다다익선은 1988년 6월부터 8월말까지 철골공사를 완료하고 9월10일까지 TV모니터 설치까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 시험 방영을 거쳐 1988년 9월 15일 거대한 비디오 설치 작품(높이 18.5m, 지름 11m, 중량 16톤)은 2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다. 당시 88서울올림픽 개막 이틀 전이었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사실 국제적인 행사에 맞춰 작품의 완성 시기를 조절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다익선 참고집(김진용 소장)에 따르면 '다다익선'이 처음부터 88서울올림픽의 개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은 아니었지 싶다. 1986년 10월 작품의 설치 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백남준은 설치 시기를 “1987년 8월 이후를 최적시기로 생각한다. 단 만약 미술관측의 사정이 불가피할 경우 87년 4월도 가능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백남준이 밝힌 일정보다 미뤄졌지만 알다시피 다다익선은 언뜻 13층 석탑을 연상시키는 한국의 불탑 모양이다. 이를 이루는 것은 1003개의 크고 작은 TV와 모니터. 모니터 1003개는 개천절 10월3일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설치 과정에서 TV와 모니터의 수가 많아지면서 백남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고, 작품의 제목도 '다다익선'으로 채택했다는 후문이다.

1003개의 TV와 모니터에서는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이 만든 세계 곳곳 건물과 사람들의 이미지들이 나온다. 경복궁, 부채춤,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의 연주 등 각국의 상징물과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백남준은 다다익선을 위해 새로운 영상은 만들지는 않았지만 요지경 속 영상들은 거대한 탑에서 빛을 뿜어낸다.

아직 재가동 중인 다다익선을 못 본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현관부터 시작해 최상위 부분까지 모두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모든 게 가능하다. 1,003대의 TV모니터와 18.5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탑을 거치면서 현대미술의 전당(殿堂)에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된다. 더불어 나선형 복도를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전통의 기복의례(祈福儀禮)인 탑돌이 의식을 행하는 셈이 된다.

백남준 프렉탈 거북선(1993),대전시립미술관 소장

한편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작품군 중 중요 작품으로 꼽히는 '프렉탈 거북선(1993)'은 현재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에서 만날 수 있다. 높이 5m, 폭 12m, 깊이 10m의 초대형 규모로 석달에 걸친 이전 복원 작업(2022)을 가졌다.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기념해 제작된 이 작품은 309대의 모니터와 앤틱 오브제(상징물)로 구성된 세계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남준은 “거북은 이순신의 하이테크 무기, 세계 최초의 장갑선, 생태학적인 특수 표본, 동양 특히 은(殷), 동이(東夷)적인 신탁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백남준 프렉탈 거북선(1993),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이처럼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이자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인 '백남준'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1942~2000)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개척자인 백남준보다 열 살 아래인 박현기. 그는 국내에서 비디오를 예술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한국적인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박현기에게 영감을 준 백남준의 작품은 대구 미국문화원 자료실의 지구의 축(Global Groove,1973).

지구의 축(1973)은 백남준이 독일서 첫 전시를 연 지 10년 만에 내놓은 비디오 작품이다. 1974년 백남준은 한 인터뷰에서 '지구의 축'에 대해 "70년대 글로벌 음악축제로 세계 모든 나라가 케이블 TV로 연결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미리 예견한 일종의 상상적인 경관"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구촌시대 전 인류가 함께 모여 즐기는 환희의 만판놀이'라는 것.

이 작품으로 백남준은 자신의 비디오 아트가 도약하는 시발점이 됐고 박현기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며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다. 이후 박현기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비디오 기술을 본격적으로 습득했고 비디오를 이용한 작품을 제작한다.

박현기,무제(TV 돌탑),1982,단채널 영상,컬러,무음,CRT 모니터,돌,가변크기,구겐하임 아부다비 소장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서울)의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에서 만난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은 돌을 촬영한 TV모니터를 자연의 돌과 함께 쌓은 작품이었다. 작품명처럼 돌탑 모양이고 모니터에 있는 돌의 이미지도 눈에 들어온다.

돌과 함께 TV모니터가 탑을 이룬 '무제(TV돌탑,1982)'은 어떤 계기로 탄생했을까. 8년 전 박현기 회고전을 담당했던 김인혜 학예연구관(국립현대미술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박현기는 초등학생이었고, 한국 전쟁 중 피난지로 유명했던 대구에서 피난 행렬 중인 사람들이 주운 돌로 고개마루에 돌탑 쌓은 것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했다. 전쟁 중임에도 바닥에 나뒹구는 돌 하나에 각자의 소망을 기원하는 인간의 모습이 훗날 그가 ‘돌탑’ 작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잠재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한국인이 소망을 비는 의미로 민속 신을 모시는 성황당이나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 나타난 돌탑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지 싶다.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1960s-1970s installation view 01

작품을 보고 있으면, 눈 앞에서 보고 있는 돌은 진짜 돌로 생각되지만 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은 돌은 '허상'으로 느껴진다. 실재하는 돌들과 모니터의 스틸 영상으로 멈춰 있는 돌 사이에서 무엇이 실재(實在)이고 무엇이 허상(虛像)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에서 본 그의 작업 스케치에는 돌과 돌 사이의 공간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스케치는 1980년 2월 박현기가 무제(TV돌탑,1982)을 제작할 당시의 자료다.

"상상의 공간, 의미의 공간, 개념의 사이"

박현기,박현기 1980년 스케치북,1978-1980,종이에 연필,펜,26x35.5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왠지 모르게 비디오 기술이 감상 경험의 중재 역할을 하는 느낌을 준다. 박현기는 돌·물 같은 동양적인 물질을 TV 모니터와 결합해왔다. 그리고 묻고 답하는 변증법적인 ‘합’을 이루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생각하는 과정을 보이려 했지 싶다. 이는 전달이 분명하고 강렬한 백남준의 영상과 다른 부분이다.

이런 박현기의 TV돌탑이 지닌 매력을 세계인들도 알아본 것일까. 박현기는 TV돌탑으로 상파울로(1979)와 파리(1980)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다수의 해외 경험을 쌓으며 비디오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이후 국내외 현대미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198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인정받는다. 1970년대 후반부터 타계 직전까지 만다라(1996) 시리즈, 현현(顯現,1998) 시리즈 등 대표작을 쏟아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58세로 생을 마감한다.

박현기 물 기울기,1979(2010 인화),c-프린트,60x50cm(x4) ed.3_10,유족 소장

나의 한 지인은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를 보며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미술사를 전공한 전직 TV프로듀서다.

"어찌보면 백남준보다 더 한국적이고 동양의 사상을 담아낸 비디오 아티스트가 바로 박현기 아닐까요."

Kang Kukjin,Visual Sense I, II,1967,Neon,stainless steel,Each 110 14 × 18 18 × 18 18 inches,MMCA Collection

이렇듯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를 비롯해 김구림, 정강자, 이건용 등 1960-70년대 전위적인 실험 미술을 다룬 전시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가 진행 중이다. 구겐하임 미술관(뉴욕)과 공동으로 작가 29명의 약 95점, 자료 30여점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 이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된다고 한다. 전시 기간 동안 실험미술사의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김구림의 '생성에서 소멸로', 성능경의 '신문읽기',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등이 순차적으로 재현된다.

전시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는 7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전시  '백남준 다다익선(2022복원 1988)'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
전시 '백남준 프렉탈 거북선(2022복원 1993)'.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2실(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대전시립미술관)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정승조 아나운서.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청주방송, TBN충북교통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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