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할 때마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입력 2023. 6. 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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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간호사=태움'이라는 잘못된 공식에 가려진 것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2022년 코로나 확진 격리 해제 이후 부득이하게 대학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대학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아닌 시스템 위주의 구조라는 점이다. 물론 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해 병원에 들어가서 나오는 순간까지 편안하게 시스템을 따라다니는 병원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필자가 방문했던 병원은 서울에서도 꽤 규모가 크고 유명한 병원이었지만 의외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예약 과정도, 진료 당일도, 검사 과정도 무엇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병원에서 당신이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거나 불편을 겪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이는 누구일까? 병원에 북적이던 사람들의 분노와 짜증은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이들, 바로 간호사들에게 향했다. 문의 받고, 상담하고, 안내하고, 검사실을 찾아주고 검사 결과에 낙담해 눈물을 흘리는 환자와 보호자를 다독이고 검사기계를 부착시켜주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돕는 일 모두가 그들의 몫이다. 대형병원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피곤함이 서린 무표정한 얼굴의 간호사들, 그런데도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손놀림과 살아있는 날카로운 그들의 눈빛을 말이다. 목소리가 건조할지라도, 표정이 냉정해 보일지라도, 확신에 찬 그들의 움직임 속에 비로소 병원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다. 병원이 사람의 몸이라면 간호사들은 온몸 어디에 닿지 않는 곳 없이 퍼져서 혈관과 같다.

사람에 대한 직업적 소명으로 병원 시스템의 구멍 그리고 더 크게는 우리나라 의료영역의 문제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이들이 간호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초유의 사태 앞에서 직업정신과 희생을 몸소 보여준 의료진들을 기억해보자. 미지의 전염병 앞에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시민을 돌본 이들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선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혹은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가벼운 증상으로 쉬이 넘길 수 있는 지금의 현재는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팬데믹 초기 이들에게 보내던 찬사와 지지를 기억한다면 지금 간호법과 관련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은 지난 5월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우리는 간호사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18년 2월 입사 6개월 차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故 박선욱 간호사 사건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간호사=태움'이라는 잘못된 공식만을 머릿속에 떠올리진 않는가. 2018년 이후 근로기준법 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신설되었지만, 간호영역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관심을 가졌는가. 2020년 '한국의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간호사들은 OECD 국가 간호사들보다 평균 5배 이상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료계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은 늘 지적됐지만 늘 그랬듯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태움' 역시 해결되기 쉽지 않다.

병원 현장을 다니며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태움을 '기가 센 여자들만 모인 간호사 집단에서 발생하는 어떤 인성 나쁜 개인의 문제' 정도로만 생각하는 시민들의 반응에 상처받는 간호사들을 볼 때이다. 물론 어떤 가해와 피해의 양상에 가해자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정한 시민 수준과 사회화된 누군가가 타인을 죽음으로 몰 정도의 괴롭힘을 행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이것은 분명 그 문제를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함을 알 수 있다. 가해자를 비난하고 배제하기 전에 왜 그 가해자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행동했는지, 피해자는 왜 그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는지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왜 그들은 그렇게 일을 잘하지 못하는, 새로 배우는 사람에게 잔인해져야만 하는가?

간호영역의 태움 문제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의 문제임은 오래전부터 매우 자명하게 드러났다. 인력 부족은 노동 강도의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업무 특성 상 작은 실수도 환자의 안녕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간호 업무는 그 긴장도와 강도에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규 간호사를 채용하고도 충분히 업무에 익숙해질 수 있는 적응과 교육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 신규 간호사를 교육해야 하는 프리셉터에게 기존 업무가 감면되거나 교육업무만 전담되지도 않는다. 가르쳐야 하는 사람과 배워야 하는 사람 모두 힘들고 긴장된 관계가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 간호 영역에 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책망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인간답게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물론 인력의 보충이 간호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과 같은 대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하는 인력을 붙잡고 이들이 숙련자가 될 기회를 늘리는 것, 최소한의 인간다운 근무 환경을 보장함으로써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인력 보충 말이다.

예전에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참석한 간호인력 간담회에서 들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저는 나이트(야간근무)를 할 때마다 제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간호부장의 차분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인간이 아닌 효율적인 병원 운영 시스템을 위해 구조화된 교대 근무제도 안에서 수많은 의료인력이 소진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간전담 간호사의 지원이나 시스템 개선, 플로팅 너스(floating nurse) 도입 등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그 효과가 크지 않다.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간호사 면허등록자 44만 명 중 활동 인력은 22만5000명으로 절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때, 힘든 공부와 시험 끝에 취득한 간호사 자격을 쉽게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원인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간호법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많지만, 이것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 새로운 법이 도입될 때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간호법은 현재 우리의 병원, 의료영역의 고질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과거 우리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도입까지 수십년을 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생명을 잃어야 했는지 기억해 보자. 간호법을 통해 간호 업무를 규정하고 그동안 병원에서 불분명한 영역에 놓여있던 노동을 확인하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작업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간호영역이 부담하던 무급 노동 등을 밝혀내고 업무 과중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적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간호사뿐만 아니라 병원 내 종사하는 모든 인력의 업무 강도를 감소시킴으로써 시민이 안전하게 건강을 돌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 이후 준법 투쟁에 나선 간호사들을 살펴보자. 이들의 준법 투쟁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가는 것,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충족 행위부터 의사의 불법 진료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지극히 시민이 지켜야 할 준법 태도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법을 지켜일한다는 것만으로 시민 건강을 돌보는 의료체계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간호사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국가의 문제인가?

연구나 업무상으로 간호대학교 학생이나 젊은 간호사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다. 간호사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원하는 시민들의 지지는 무엇인지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혼자 버티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으니까요."

팬데믹을 겪은 시민이자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의료시스템을 경험해 온 시민으로 아직 간호법이 마련되지 않았음에 나는 부채감을 느낀다. 간호법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간호법으로 야기될 수 있는 우려를 가볍게만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이 우리가 가진, 그리고 간호사들이 겪고 있는 이 지난한 인권 문제를 해결을 위한 첫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에 명명되지 않은 노동을 부담하며 스러져가는 수많은 노동자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당신이 간호가 필요할 때 어떤 간호사를 만나길 기대하는가? 업무로 인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음에도 산업재해 보장을 받기 위해 수년 간의 법정 투쟁해야만 했던 간호사인가, 임신 순번제로 고통 받는 간호사인가,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이나 질염에 늘 시달리는 간호사인가, 타인에게 지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힘듦을 벗어나려는 간호사인가,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대리하고 있는 지친 간호사인가.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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