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축소기’엔 전세 제도 리스크 심화… ‘디레버리징’ 대책 필요[Deep Read]

2023. 6. 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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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무의 Deep Read - 전세 제도 유효한가
임대인에 전세는 부채를 통한 일종의 투자전략… 자산가격 급락하면 리스크 커져
규제·지원책 남발과 도시 축소 따른 역전세난·사기 극성… 시장친화적 대안 내놔야

전세 사기로 인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전세의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발언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 ‘향후 전세제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화두를 강하게 던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전세는 그 이자소득을 임대료로 실현하는 임대계약이 아니다. 전세는 임차인에게서 빌린 전세금이란 부채를 활용한 투자전략으로, 일종의 ‘레버리지’다. 전세 제도는 그동안 도시의 성장을 먹고 살았다. 이제 ‘도시 축소기’ 주택시장에서 전세 제도의 시장친화적 변화와 대안 마련이 절실해졌다.

◇전세와 관련된 오해들

보증금 없이 2500만 원의 연간 순수월세를 받을 수도 있는 10억 원 아파트를 5억 원 전세를 안고 구입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직접 투자금액이 5억 원으로 줄어듦으로써 연간 가격이 1억 원 올랐을 때 자기자본 수익률은 10%가 아닌 20%로 늘어난다. 대신 월세 수입은 포기한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10% 내리면 자기자본은 4억 원으로 줄어들어 수익률은 -20%가 된다. 이것이 전세라는 레버리지에 내재한 위험이다.

전세라는 부채를 임차가구로부터 조달되는 무이자 대출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세는 은행 대출보다 값비싼 부채다. 저금리였던 2020년 시장 상황을 가정하고 논의해보면 이렇다. 전세가 아닌 은행 대출로 5억 원을 조달해 구입 후 순수월세로 임대하면 연간 임대수입이 2500만 원 발생하고, 이 중 대출이자율 2.5%에 해당하는 1250만 원만 이자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1250만 원 순임대수입으로 취득된다. 이때 레버리지 비율은 50%로 자본수익률은 20%로 실현된다. 그런데 전세를 유지하면 은행 대출 이자율(2.5%)보다 비싼 전세금의 이자율인 전월세전환율(5%)로 월세를 깎아줌으로써 이자를 지불하면 임대수입은 0원이 된다. 전세는 비싼 대출이다.

의문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이자율인 전월세전환율이 왜 시장이자율의 2배 수준으로 높게 유지될 수 있는지다. 이번 전세 사기 문제를 겪으면서 은행 대출금과 달리 보증금(전세금)이라는 부채는 임대인에게 주어지는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극히 약하다는 점이 상기됐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원금 상환은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불안한 시장이라면 원금 상환 지연 혹은 미상환에 대한 리스크는 전세 임차가구가 짊어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임대인이 취할 수 있는 이점으로 인해 시장이자율보다 높은 전월세전환율이 허용된다.

◇전세 제도 존속할까

전세금의 안정적 가치는 임차가구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시절에만 유효하다. 전세가나 매매가가 급락하면 신용경색으로 전세 임차의 연결고리가 끊기게 돼 레버리지 위험이 현실화된다. 이런 불안한 시장 상황은 인구 감소로 인한 도시 축소기에 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전세가 2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개발된 것이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장기시계열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산114㈜의 월세지수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전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프는 1998년 이후 주택유형별 보증금의 비중(보증금/전세가 비율)에 따라 구분된 전세를 포함한 보증부월세의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추이를 보면 20여 년 동안 전세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넓은 보증부월세의 스펙트럼에서 비중이 주도적으로 증가하는 유형은 순수월세가 아니고, 계약 기간(약 2년)의 월세를 모두 보증금으로 확보할 수 있는 보증금이 전세의 20% 미만인 보증부월세이다. 비수도권의 비아파트 시장의 경우는 이미 이 유형의 보증부월세가 전세보다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월세화의 최종 목적지인 듯 보인다.

전세 비중의 감소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 중이다. 전세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추이지만 전세의 대안으로 상당한 보증금을 유지하는 반전세 혹은 보증부월세가 그 자리를 단기적으로 대신하게 돼 여전히 보증금이라는 부채는 공존한다. 전세의 완전한 소멸도 어렵다. 전세금이라는 것이 강제적인 저축 수단으로, 그리고 증여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영역 또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시에 전세를 없애라는 요구는 현재 쓰고 있는 신용카드를 버리고 모두 현금을 사용하라는 요구와 같다.

◇시장친화적 대안

전세 사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장 불안은 전세 대출 확대, 청년층에 대한 대출 지원, 다주택자 규제(종합부동산세 강화), 전월세 상한제 등 단편적인 규제와 지원책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자 부작용이다. 이미 주택가격과 전세가의 급락으로 국지적 빌라시장에서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경험하고 있고, 조만간 아파트 시장으로 확대된 역전세난과 깡통전세의 불안한 전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 축소기에 전세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시장친화적인 대안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전세 대출에 있어 전세가율에 따라 증가하는 리스크를 감안한 대출금리의 차별화를 유도한다면 시장 기제 하에서 합리적인 전세 비중의 감소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는 ‘광의의 보증부월세’의 한 극단으로 반전세와 같은 보증금 비중이 높은 보증부월세와 유연한 대체적 관계를 지닌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전세 제도의 레버리지 리스크를 고스란히 시장 가격화하면 전세는 그 존재감이 퇴색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전세가 비율에 따라 누진적인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수수료 요율 구조를 도입하면 전세의 비중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임대인이나 그 비용을 전가 받을 임차인에게 전세보다는 반전세가 유리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에 내재한 리스크를 합리적인 시장가격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디레버리징’ 유도

전세 제도는 자산가격 하락기에 리스크를 키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도시 성장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전세 관련 리스크가 마구 불거져 나오고 있다. 저렴한 임대계약이면서 자가로 이어지는 강제 저축 수단이라는 전세의 긍정적 기능이 퇴색되고, 월세보다 비싼 빚으로 임대계약을 유지하면서 전세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초래되는 시장 불안을 떠안고 가는 현실이다. 도시 축소기에는 ‘디레버리징’을 유도하는 시장친화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 용어 설명

‘레버리지’란 수익 증대를 위해 차입자본(부채)을 끌어다가 자산매입에 나서는 투자전략의 총칭. 즉 남의 돈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 ‘레버리징’은 부채 발생, ‘디레버리징’은 부채 축소를 뜻함.

‘전월세전환율’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 여기선 시장 균형 전환율의 뜻으로 쓰임. 공실률이 많아 손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다가구주택 시장에서 아파트보다 높게 형성.

■ 세줄 요약

전세와 관련된 오해 : 전세는 그 이자소득을 임대료로 실현하는 임대계약이 아님. 전세는 임차인에게서 빌린 전세금 즉 부채를 활용한 투자전략으로, 일종의 ‘레버리지’임. 전세금은 은행 대출보다 값비싼 부채.

전세 제도 존속할까 : 전세 제도는 그동안 도시의 성장을 먹고 살아옴. 하지만 인구 감소와 단편적 규제·지원책 남발로 전세·매매가가 급락하면서 전세 사기,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등 불안한 전선이 형성됨.

시장친화적 대안 : 전세 제도에 내재한 리스크를 합리적 시장가격으로 전환시켜 전세의 극심한 변동성과 불안정성 줄여나가야. 도시 축소기에 ‘디레버리징’을 유도하기 위한 시장친화적 정책과 대안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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