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정’의 마지막을 함께한 한국 서양미술의 거장 이쾌대
1933년 ‘신가정’으로 창간한 ‘여성동아’는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창간호부터 1981년 3월까지 표지를 장식했던 수많은 그림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좌우 갈등 속 사라질 뻔한 이름, 이쾌대
그는 1938년 도쿄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한 '운명’을 시작으로 3년 연속 입선했다. 1941년 한국적인 서양화를 그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중섭, 김학준, 문학수 등과 함께 '조선 신미술가협회’를 만들었다. 서양화와 한국화 그 사이에서 답을 찾아내려는 고민이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다. 한국 전통 복식을 하고 있는 인상적인 표정의 화가가 서양의 팔레트를 들고 있다. 한국화 붓을 들고 꼿꼿하게 서 있는 자태는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예술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945년 광복 직후 민족 예술을 만들어보겠다는 그의 목표는 첨예한 정치 대립 속에 그 색이 바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그는 북한이 점령한 서울에 머물렀다가 북한군을 위한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이후 연합군에 붙잡혀 거제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그는 포로 교환 때 월북을 선택해 오랜 기간 우리의 예술사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지게 된다.
으레 많은 예술가가 그랬듯 이쾌대는 월북 이후 북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청되고 밀려났으며,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고문을 당했고, 그의 이름은 금기시됐다.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에서 그의 작품뿐 아니라 '이쾌대’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신가정’ 표지화 속 표현주의
다시 1930년대로 돌아가 보자. 1936년 9월호 표지 그림의 모델은 이쾌대의 아내인 유갑봉 여사였으리라 추측한다. 언뜻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은 인물을 왼쪽 아래서 본 각도와 색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당시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을 유럽 화풍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자유롭고 정제되지 않은, 그래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의 붓 터치에서 동시대 독일에서 활동한 표현주의 작가의 느낌을 찾을 수 있다. 활동 초기엔 화풍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한국화의 한 장르처럼 잔잔하게 묘사되던 이쾌대 그림 속 인물들은 점차 존재감을 가지고 개성을 드러내게 된다.
20세기 초 등장한 독일의 표현주의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문화권에서 등장한 화풍이다. 자신의 내면이 가진 상처와 감정들을 드러내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쾌대는 이 여인과 주변의 분위기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 역시 일제강점기 억압받는 조선인들의 삶을 알기에 여성의 모습을 마냥 밝지 않게 그린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한국 여성들의 대표적인 얼굴을 그리고자 한 그의 노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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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안현배 예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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