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봉황산엔 토함산 부럽잖은 석굴암 있다 [함영훈의 멋·맛·쉼]

2023. 6. 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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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없는 한우산, 시리고 맑은 찰비계곡도

[헤럴드경제, 의령=함영훈 기자] 의령에도 석굴암이 있다. 의령 석굴암은 신비한 동굴로 들어가 부처님 코앞까지 간다.

이 동굴 불당은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의령 서쪽 합천 가는 길목 궁류면 청정로 변, 봉황산 숨은 절경지역 기암 절벽 아래 사찰, 일붕사의 동굴 법당을 말한다.

석굴암은 국내외에 몇 곳이 있는데, 탐방객의 감흥은 의령 봉황산에 이르러, 경주 토함산을 넘는다.

의령 석굴암(동굴법당)
한우산 산책길
의령수박

의령, 진주, 합천에선 유명하지만, 대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나만의 은신처라는 느낌이 드는 이곳을 잘 모른다.

종교가 다른 여행자도 이 완만한 아치 동굴 속에 쑥 들어가 있는 동굴 법당의 신비로움과 고요함, 경외로운 분위기에 경건함을 잃지 않는다.

▶의령 석굴암은 기네스북 등재, 경주 석굴암은 세계유산= 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법당 크기는 석굴 대웅전 456.2m²(138평)와 석굴무량수전 297.5m²(90평)이다.

신비로운 국보이자 세계유산인 경주 석굴암은 여행자의 접근이 차단돼 있지만, 이곳은 예를 갖춰 조신한 행동만 하면, 누구든 절대자 면전까지 갈 수 있다. 신비로움에서도 경주 석굴암에 뒤질 것이 없다.

일붕사 전경 왼쪽 두 전각 내부가 석굴암(동굴법당)이다.
일붕사 대웅전 실내에 들어갔건만, 다시 사찰의 실외 풍경과 비슷한 정문과 수호신이 나온다.

봉황산 가파른 절벽 지역에 안착한 일붕사는 여느 절 보다 입체적이라, 평지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니 보기에 좋다. 수십 개의 작은 보살상이 담 위에 도열한 모습 또한 특이하다.

관광도시로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의령이고, 일붕사 역시 서울여행자 입장에선 많이 들어본 곳이 아니라서 이런 풍경이 그저 좀 특이하다 정도로만 여기지만, 계단을 올라 대웅전에 이르면 상황은 확 달라지고, 쩍 벌어진 입을 다무는데 애를 먹는다.

멀찍이 보았을 때 어두컴컴해 보이는 내부가 궁금해진다. 대웅전 앞에 신발을 벗고 들어선다. 법당 내에 대문 기둥 같은 것이 있고 그 옆에 수호신들이 양쪽에 버티고 서서, ‘어찌 사찰의 실내에 바깥 시설물 같은 것이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네모난 개방형 출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이곳을 잘 몰랐던 여행자는 그 엄청난 풍경에 놀라고 만다.

일붕사 동굴법당 대웅전
일붕사 담벽 위의 보살상

▶탈속, 무욕, 구도..신성한 공간, 최고의 대웅전= 완만한 곡선의 바위굴이었다. 그리고 동굴 좌우엔 중생들의 안위을 보살피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상들이 은은한 조명 속에 도열해 있다. 동굴 속으로 25m를 걸어 가면 3불과 불단, 스님의 목탁이 나온다.

입구에서부터 20여m를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가는 동안, 말 할 수 없는 경외심이 느껴진다. 진정한 탈속의 공간 같기도 하고, 무심, 무욕의 피난처 느낌도 있으며, 신심 깊은 수도자가 구도의 길을 마침내 찾을 것 같은 신성함이 풍긴다.

국내외 수많은 사찰을 가보았건만, 단언컨대, 국내 최고의 대웅전이다. 사실 여행자로선 나만 알고 나만 즐기기 위해 숨겨두고 싶다는 충동 마저 인다.

모두가 경건하게 숨죽이는 가운데, 작은 소리에도 울리는 가벼운 공명이 마음을 흔든다. 숨소리 조차 조심하게 되는 이곳에서 스님의 독경도 그리 크지 않다.

일붕사는 727년 신라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의 후신이다. 대야성이 가까운 이곳은 7세기 삼국경쟁때 최고의 격전지 였고,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기에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지였다고 한다.

일붕사 폭포

▶일붕사의 행복론= 중세들어 불교탄압 과정에서 절의 위치를 지금 자리로 바꾸었는데, 다시 반대세력이 파괴하려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 불이 훼손되지 않는 것을 보고 불상을 피신시켜 부활을 꿈꾸며 권토중래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934년 부활했으나 화재 등 과정을 거쳐 1986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붕사 일주문을 통과하기 전 깎아지른 절벽 봉황대 아래엔 이 고을 어느 효자가 세운 부모은혜탑비가 있다. 동굴 대웅전 옆에는 한줄기 폭포가 떨어져 운치를 더한다.

경사진 사찰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스님의 잠언이 또 한번 여행자의 가슴에 감동을 전한다.

‘신발이 꼭 맞을 때는 발을 잊고/ 허리띠가 잘 맞을 때는 허리를 잊으며/ 가슴이 올바를 때는 누굴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쉽게 하는 길은 쉽다는 것을 모르고 가는 길입니다. 행복이나 성공도 꼭 맞는 신발처럼 그걸 느끼지 못할 때, 그냥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허리띠가 잘 맞으면 허리를 잊고 살 듯이, 행복이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입니다.’ 갑자기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봉황대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과 녹음이 우거진 절벽 사이 계단을 오르면, 자연동굴 지나 석문, 또 하나의 자연동굴과 약수터가 나오는데, 절벽속 약수터 역시 이곳이 주는 반전매력이다.

한우산

▶한우산과 찰비계곡= 의령 한우산(836m) 역시 감춰진 보석관광지이다. 한우가 풀을 뜯는 곳이 아니라 찬비가 내리는 곳이라는 한자조어(寒雨)를 쓴다. 정상의 정자에 앉으면 의령 일대 심산 유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찬비(혹은 찰비)라는 것은 이 산의 계곡물이 시리고 맑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한우산의 대표 명소중 하나가 찰비계곡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 차한대 겨우 지나도록 좁은 길을 내었는데, 위에서 보면 갈지(之)에 S라인을 합쳐놓은 듯 하다. 쿠스코에 있는 신의 그림 일부 같기도 하다.

우마차를 끌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풍경으로 매조지하는 영화 안성기·송옥숙 주연의 ‘아름다운 시절’ 촬영으로, 의령과 주변 고을에서는 유명세를 탔지만, 수도권 탐방객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개발의 손때가 덜 묻은 야생성이 오히려 친근하다. 한우산은 사시사철 꽃과 함께 한다.

"의령수박 맛보세요"

▶이수인 선생 고향...앞으로 앞으로 의령 자꾸 걸어가다보면...=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고향의 노래)...의령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음악가 이수인님의 고향이다.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역시 그가 곡을 붙인 명곡이다.

의령을 자꾸 걸어가다보면, 의령 구름다리, 설뫼충효테마파크테마공원, 의병박물관, 서동생활공원, 탑바위 전망대 등 다양한 매력들을 만나고 달디 단 의령수박을 만난다. 의병의 고장 답게, 내 자랑에 인색하던 의령이 요즘 국민을 향해 고개를 내밀어 미소짓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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