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리고, 할머니 돌보는 중학생…어린 '영 케어러' 여전히 사각지대
[편집자주] [편집자주] 2021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은 '영케어러'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과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 할머니와 살고 있는 유모양(14). 중학교에 입학한 지 반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지만, 유양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다. 부모님의 방임(아동학대)으로 친인척위탁을 통해 할머니 손에 자란 유양은 지난 3월 할머니가 일을 하다 크게 다친 뒤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은 복지센터와 연결이 돼 담당자가 찾아와 먹을 것을 주고 집안일을 돕고 있지만,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도움을 구할 곳은 없었다. 유양은 "가족 중엔 저희를 도와주려 하는 분들이 없었고, 저희끼리 있다는 것조차 모르셨다"며 "밥과 청소, 빨래는 모두 저의 몫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할머니가 다치기 전만 해도 챙김을 받았던 유양에게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청소년)'로서의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게 없는 상황이다. 그는 "최근 할머니가 퇴원해 집에 오셨지만, 아직 많이 아프시고 움직이기도 어려워하신다"며 "예전엔 학교가 끝나면 지역아동센터에 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할머니를 대신해 저녁을 차려야 해서 집에 곧장 온다"고 털어놨다.
첫 발을 떼긴 했지만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조사에서 모두 만 13세 미만의 어린 영 케어러들은 빠진 상황인데다, 현장에선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지원책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돌봄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영 케어러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이들을 도울 시스템 마련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지난 4월 복지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조사에서 모두 영 케어러들은 '생계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수치로는 각각 75.6%, 61.8%였다. 이어 2위는 복지부 조사에선 의료, 서울시는 돌봄 지원이었다. 선호하는 순위는 조금씩 달랐을지 몰라도 영 케어러 모두 최소 2개 이상의 지원을 바라고 있었다. 7년째 영 케어러 생활 중인 김현주씨(26)는 "한 부분이 해결된다고 돌봄을 벗어날 수 있진 않다"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도 시간이 없을 수 있고, 정보가 부족해 지원액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로 영 케어러들이 처한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지만,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만 13세 미만 초등학생부터 조사 대상에 빠졌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진 않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나서서 발굴해야 할 필요가 가장 큰 집단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최근 1년 이내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이들 중 만 7~24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6%가 영 케어러였으며, 그중 23%가 초등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59%)은 한부모 세대였으며, 학습 및 진로진학, 경제활동과 더불어 돌봄 역할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현재 국회에도 영 케어러 지원 및 관련 기구 설치 등의 근거가 담긴 법안 3건이 발의된 상태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지난 3월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을 대표 발의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이 공론화됐을 당시 대선 후보들도 국가의 간병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아직도 전국에 정확히 몇 명의 영 케어러가 존재하는지 규모 파악조차 안 되는 등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라도 하루빨리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복지 시스템을 활용해 영 케어러를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회장)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기존의 돌봄서비스 체계를 개선해 간병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청년이란 특성에 맞춰 취업, 학업 등의 부분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보가 없어 지원받지 못하는 아동·청년들이 없도록 포털이나 상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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