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지평 너머] 민주주의의 위기
2009년 5월23일은 토요일이었다. 주 5일 근무도, 주 52시간 노동도 모르던 시절, 일주일 중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 회사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회사로 튀어나갔다. 황망함 속에서도 ‘일’은 해야 했다. 그날 오후 “그동안 힘들었다. 원망하지 마라”라는 큰 제목이 달린 8쪽짜리 신문이 나왔다. 경향신문 77년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발행된 호외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 흘렀다.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
지난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의 주제다. 노 전 대통령의 어록에서 따온 문구인데, 한국 민주개혁 세력에는 뼛속 깊숙이 각인된 믿음과 희망이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그 기대는 현실이 돼왔다. 수십년 동안 치열한 싸움 속에서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딛고 우리 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민주화의 길을 갔다. 좀 더 자유로워진 집회와 시위에서 시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좀 더 힘이 실린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언론의 자유도 개선됐고 시민단체의 역할도 커졌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래도 역사는 진보했다. 그 과정에 민주개혁 세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3차례 정권을 잡았다.
그 민주개혁 세력은 지금 부패 세력으로 몰리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 검찰, 보수언론은 ‘원팀’이 돼 민주개혁 시대를 주도했던 야당을 공격하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바로 그 기득권 세력처럼 변했을 거고, 잇속 빠른 기회주의자들이 그 권력에 편승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약한 고리가 집중 타깃이다. 공격의 최종 목적지는 내년 총선이다.
더 무서운 것은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온 역사의 진보가 부정되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폭’으로 몰리고 시민단체는 ‘선진화’의 대상이 되고 있고, 비판적 언론은 ‘수사’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 핵심 요소의 하나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들의 권리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도 위협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서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불허하겠다, 물대포가 없어서 난장 집회를 막지 못한다 등등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주문이 쏟아졌다. 경찰은 6년 만에 강도 높은 집회 강제 해산 훈련을 시작했다. 요즘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폭력적 양상으로 흐르는 일은 거의 없다.
‘민주주의 선진국’ 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에 반발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는 시위를 하고 있다. 쇠파이프와 곤봉,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는 한국에선 20세기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집회와 시위로 호소하는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선호하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을 통해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한국의 ‘메이저 언론’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집회와 시위 외에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고, 심지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야만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정부·여당은 자신들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주장이 분출하는 집회와 시위가 싫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민주사회를 통치하려면 반대 의견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반대에 직면하며 통치하면 어떻게 그런 반대가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떤 공적 목표를 달성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고 충고한다.
민주주의의 모범이 돼야 할 정치권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진영은 물론 젠더·세대·빈부·노사 등 사회 전반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한 전망과 철학이 없다. 이런 난제의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정치 체계는 무너져 있고, 그저 상대방을 박멸하겠다는 증오의 난타전만 벌이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주체는 시민들이다.
7년 전 촛불집회도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 먼저 나서 불이 붙었다. 시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는 이 퇴행적인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서지고 말 것이다. 민주적 시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다시 또 노 전 대통령의 묘비 받침판에 적힌 글귀가 소환되는 시대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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